[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이제 할머니 만나러 갑니다.”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이 패럴림픽 두 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바라던 금메달은 아니다. 그만큼 값진 동메달을 품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보러 간다.
주정훈은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K44 등급 80㎏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2020 도쿄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쿄에서 대한민국 장애인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패럴림피언이 됐다. 최초 메달까지 따냈다. 사상 첫 금메달도 바라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동메달이다. 8강에서 골반 부상을 당하면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참고 뛰었다. 끝내 동메달을 품었다. 그 자체로 대단하다.
주정훈은 할머니를 떠올렸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경남 함안의 시골 할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할머니 김분선 씨는 손자 주정훈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사고가 터졌다. 2세 때 오른손을 잃었다. 할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집 밖으로 나왔고,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 오른손이 절단됐다. 할머니는 자신이 죄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다. 그리고 2018년 다른 일이 생겼다.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치매 때문이다. 주정훈이 2020 도쿄대회 동메달을 들고 할머니를 찾았으나 할머니는 손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몇 개월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태권도 선수로 우뚝 선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요양원으로 향했으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파리에 왔다.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좋은 경기를 하고 싶었다. 끝내 메달을 따냈다.
주정훈은 “이제 약속했던 대로 할머니 찾아뵙고 할머니한테 메달 자랑하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생전 좋아했던 소고기를 싸 들고 가기로 했다.
이어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이런 모습을 보셨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오래 사셨을 것 같다. 할머니가 편찮으신 후에야 좋은 모습 보여드린 것 같아 아쉽다. 태권도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고, 더 열심히 해서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부모님 이야기도 꺼냈다. “할머니도 정말 소중한데, 우리 부모님도 내 경기를 다 지켜보셨다. 그래서 부모님과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효자 노릇 해보려 한다. 평소 무뚝뚝하다. 우리 부모님 정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머니, 아버지가 내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했다. 내가 못난 아들이다. 부모님 생각하면서 경기에 나서면 조금 감정선이 흔들리는 것 같더라. 이제 경기 끝났다. 부모님께 막내아들로서 애교도 좀 부리고, 철없는 아들이 되어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