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더 독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패럴림픽 2회 연속 동메달을 차지한 태권도 간판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이 새롭게 다짐했다.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김예선 감독이 잡아주지 않았으면 동메달도 없다.
3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주정훈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경기 다음 날 아침까진 아쉬움이 남았지만 동메달도 값지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한다. 이제는 다음에 있을 경기 더 잘 뛰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지난 31일 펼쳐진 2024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80㎏급(스포츠등급 K44)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했다. 2020 도쿄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8강에서 상대 선수 공격에 왼쪽 골반을 맞아 통증이 생겼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결국 준결승에서 패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시상식도 다른 메달리스트들의 부축을 받아 참석했다.
사실 주정훈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관두려고 했다. 그는 “도쿄와 파리에서 두 번 다 패자부활전(동메달 결정전)을 경험하게 됐다.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내가 ‘큰 무대 체질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동메달 결정전을 앞둔 주정훈은 경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와 3년째 동고동락 중인 김예선 감독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 그리고 “다시는 안 올 기회”라며 불호령을 내렸다.
김예선 감독은 “(4강에서)실력 차이가 크게 나거나 경기력이 부족해서 이길 가능성이 적었다면 패배감이 덜 했을 거다. 저도 주정훈도 멘탈이 흔들렸다. 예상대로 ‘포기한다’고 말하길래 강하게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주정훈은 세계랭킹 1~8위만 출전한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에서도 부상이 있었다. 경기 중반부 통증을 느껴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졌다. 당시에도 김예선 감독은 “넌 선수의 마인드가 없다”고 질타했다.
주정훈은 “당시 나는 몸을 지키는 게 먼저였고, 감독님이 모질게 군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생각해보면 감독님의 말이 이해되곤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다. 잘 대처해주신 거 같다”며 고마워했다.
주정훈은 4년 뒤 LA 패럴림픽 금메달 도전을 예고했다.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선수생활을 하기로 했다. 그는 “통상 장애가 있으면 편의를 봐주는 것에 익숙해지니 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제대회에서 만난 외국 선수들은 장애가 있어도 멘탈이 강했다”며 “적어도 경기나 대회를 앞두고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그런 독한 선수가 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선 감독이 바라본 주정훈은 계속 성장 중인 선수다. “멘탈이 흔들릴 때 빨리 털고 일어나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도 좋아졌다. 선수 본인은 자신을 낮추지만, 체급에서 가장 경기력이 좋은 선수”라고 칭찬했다.
이어 “패럴림픽 기준으로 아직 어린 선수다. 자신감을 더 가지고 운동했으면 좋겠다. 훨씬 노련해져서 앞으로 더 보여줄 모습이 많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패럴림픽 태권도 1호 메달리스트인 주정훈의 눈은 도쿄와 파리에 이어 LA로 향하고 있다. 그는 한 단계 더 도약해 자신의 뒤를 따르는 후배 선수들과 함께 같이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김예선 감독도 “주정훈이 도전을 이어간다면 함께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