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보통의 가족’(2024)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설경구와 허진호 감독 인연은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박하사탕’(1999)으로 일본에 초청받아서 갔어요. 그때 허 감독님이 ‘8월의 크리스마스’(1998)으로 와 계시더라고요. 길에 나가자는 거예요. 술을 엄청나게 마셨죠. 짐을 싸 들고 내 방으로 오더라고요. 3일을 내 방에서 잤어요. 왜 자기 방 놔두고 여기 와서 자냐고(웃음).”
21세기가 됐다. 인연이 닿진 않았다. 이번엔 설경구가 허 감독을 찾았다. ‘봄날은 간다’(2001) 촬영장이었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허 감독과 이영애가 버스에서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단 1분도 촬영을 못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끝도 없이 대화하는 거예요. 이영애랑 계속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히히’ 하면서 얘기하다가 또 가만히 있다가 또 얘기하고 도대체 안 찍어요.”
서로 바빴다. 통 못 봤다. 만난 건 최근이었다. 설경구는 “어느 날 감독님이 술 한잔하자고 해서 갔다. ‘보통의 가족’ 대본을 들고 온 것도 아니었다”며 “하는 거 있는데 같이 하자고 해서 ‘예’ 하고 그냥 한다고 했다”고 웃어 보였다.
멜로가 짙은 전작과 톤이 다르다. 설경구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결은 같다”며 “촘촘히 쌓아가는 게 극적으로 치닫지 않는다. 미세하게 쌓아가는 게 같다”고 분석했다.
‘보통의 가족’ 식사신은 부조리극이다. 격렬하게 부딪히는 대사에서 의외로 웃음이 터진다. 허 감독이 의도한 장치다.
“촬영할 때 ‘너는 왜 이걸 이해 못 해!’ 이 대사에 터졌어요. 세 배우(장동건, 김희애, 수현)가 빵빵 터지더라고요. 감독님도 터지고. ‘왜 웃지?’ 하는데, 하니까 또 터져요. ‘야, 웃지 마!’ 하는데 그렇게 웃기대요. 나중에 동건이 귀 보고 대사했어요.”
결말이 보통의 예상을 빗나간다. 재완(설경구 분)-재규(장동건 분)가 그리 살갑게 굴지 않아도, 형제는 형제다. 서로 싸워도 서로 실없이 주고받은 농담이 있었다. 관객 마음이 놓였다. 그랬기에 마지막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설경구는 “날이 서서 싸웠으면 이 영화는 관객들이 ‘그만그만’했을 것”이라며 “툭툭 뱉듯이 하는 대사가 이 영화 톤에 맞았다”고 말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