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결혼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거쳐서였을까.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연기력도 확 늘었다. 늘 러블리한 인물을 그려왔던 박신혜에게 주어진 숙제는 미모의 악마. 변신은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SBS ‘지옥에서 온 판사’의 판사 강빛나(박신혜 분)의 몸엔 지옥에서 온 악마 유스티티아(오나라 분)가 스며들었다.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웠던 강빛나에게 극악무도한 유스티티아가 들어가자 단숨에 다른 사람이 됐다.

“정의는 개나 줘”라는 말을 쉽게 하고, 법과 정의의 실현 따윈 안중에 없다. 꺼먼 속내만 남았다. 살인을 저지른 악인 10명을 처형해 다시 지옥으로 올라가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늘 연구한다. 악인을 찾아내면 곧 처단한다.

박신혜는 악을 처단하는 악마 유스티티아에 빙의된 강빛나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판사로서 죄인을 풀어주고 사적으로 보복하는 형태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고민이 없다. 악인이라 판단되면 곧 칼을 든다. 타인의 신체를 갈기갈기 훼손하는 데 표정은 웃고 있다. 죄인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타격 무술을 배운 박신혜의 주먹은 타격감도 좋다. 시원시원하게 때린다. 대리보복이라는 설정 덕에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2회를 남겨둔 시점까지, 박신혜가 ‘하드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전반의 설계를 영리하게 했다. 매우 연극적인 톤이다. 다소 과하다 싶은 느낌도 있다.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시청자를 유입했다. 폭력성이 너무 짙을 뿐 아니라 죄인의 잘못 역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 리얼하게 느껴지면 불편할 수 있다.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거부감을 희석시킨 게 강빛나 캐릭터다. 철저하게 판타지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

여기에 박신혜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도 고루 섞여 있다. 제멋대로이고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인물, 거기에 폭력적이고 잔혹함에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절대 미워보여선 안 되는 주인공의 법칙을 충실히 지킨다. 사랑스러운 악마를 만들어낸 박신혜의 내공은 분명 칭찬 받을 대목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박신혜의 필모그래피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 나온 박신혜는 주로 보편적이고 평이한 인물을 많이 맡아왔다. 일상에 발 붙인 현실적인 인물이 많았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캔디형 캐릭터’가 많았다. 그의 연기와 표정에서 익숙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강빛나를 통해 스펙트럼을 크게 확장했다.

원톱 주인공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8%만 나와도 호성적이 나오는 요즘 분위기에서 ‘지옥에서 온 판사’는 6회부터 10%를 넘겼다. 최고 시청률은 13.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다. ‘커넥션’ 지성, ‘굿파트너’ 장나라 등 각축전이 예상되는 SBS 연기대상에 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누가 받아도 겸허히 인정할만한 경쟁력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강빛나는 악하고 못되면서도 보기싫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박신혜가 자신의 매력으로 사랑스러운 악마를 구축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박신혜 개인에게도 크게 의미 있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