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없는 살림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값싼 바이올린을 귀하게 여기며 음악을 시작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악기를 더 배우지 못했다. 예술에 대한 갈증을 국악으로 풀었다. 굳이 악기가 필요 없으니까. 대학교 시절에 은사를 만나 소리를 더욱 연구했다. 산속에서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곤 소리를 했다. 국악과 오랜 인연이 tvN ‘정년이’로 이끌었다. 문소리 이야기다.
문소리는 특별출연의 아이콘이 됐다. 영화 ‘아가씨’ ‘1987’를 비롯해 ‘정년이’와 넷플릭스 ‘지옥2’ 등 분량이 많지 않지만, 임팩트를 드러내야 하는 인물이 있을 때 창작자는 꼭 문소리를 찾는다. 강렬한 아우라와 뛰어난 연기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추월만정’을 준비하고 목포 사투리를 써야 하는 등 고된 숙제가 많았지만, 문소리는 국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정년이’를 택했다.
문소리는 “대학교에선 교육학 전공이었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컸던 아이였으니, 얼마나 재미없었겠냐. 어느 날 창소리가 들려서 가봤더니, 다들 소리를 하고 있었다. 소리하고 싶으면 와서 하라고 해서 곧장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유독 예뻐했다. 코로나19 때 돌아가셨다. 팬데믹이라 장례식도 못 찾아뵀다. 죄송함이 있다. 국극 책을 보는 데 선생님이 초창기 구성원이셨다. 그 추억이 깊어 ‘정년이’를 택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태리는 기획 단계부터 ‘정년이’에 참여했다. 애초에 웹툰 원작 주인공도 ‘아가씨’의 김태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제작진에서도 김태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김태리는 문소리가 창을 했던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다만 재밌는 점은 실제로는 소리에 애정이 깊은 문소리가 극 중 목포댁으로 나올 땐 딸 정년(김태리 분)이 소리를 못 하도록 막는다는 데 있다.
“소리가 소리를 못 하게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사실 왜 그렇게 못 하게 하는지 서사가 아주 분명하진 않아요.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다 풀어줄 수 없으니 조금 더 도를 넘어서 연기를 하기도 했죠. ‘정년이’에 빌런이 없잖아요. 정년의 앞길을 조금 더 강하게 막아보자는 심정으로 연기했어요.”
‘정년이’의 초반 문을 연 건 목포댁과 정자(오경화 분), 정년의 관계다.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정년과 어떻게든 뜯어말리는 목포댁,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정자의 얼굴이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모친 몰래 정년을 서울로 보내는 정자의 눈물에서 큰 감동이 일었다. ‘정년이’ 인기의 단단한 발판이 됐다.
“3박 4일동안 셋이 목포 어학연수를 떠났어요. 경화는 광주 출신이라 굳이 안 해도 되는데 호흡 맞추려고 온 거죠. 사투리 연습도 많이 하고, 목포의 맛과 기운을 느끼러 갔어요. 경화를 처음 봤는데 ‘엄니 오셨어라’라고 당차게 인사 하더라고요. ‘그래. 네가 큰 딸이냐?’라고 받아줬죠. 청산도가 해냈어요. 지난 10일에는 경화, 태리랑 저녁 먹고 모니터링 했어요. 옥경(정은채 분)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맘껏 질렀죠. 하하.”
이미 소리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자식의 재능을 억누르려는 목포댁은 어쩌면 가부장적으로 보인다. 문소리에게 “만약 자녀가 연기를 한다면?”이란 질문이 던져졌다. 문소리는 2011년생 딸이 있다. 고민에 잠겼다.
“연기가 아니라면 뭘 해도 응원해줄 수 있는데, 연기를 한다고 하면 참 걱정이네요. 정말 무서운 비평가가 될 수도 있잖아요. 엄마로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식의 연기를 외면할 수도 없을 거고요. 너랑 나랑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고 말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한다고 하면 뭐 막을 수 없겠죠.”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