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 기자] “나 역시 공격포인트는 생각도 못 했다.”
드라마같은 일이었다. 지난 2005년 혜성처럼 등장, ‘축구 천재’ 수식어와 더불어 K리그에 신드롬을 일으킨 박주영(39·울산HD)이 20년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은퇴 경기’에서 1골1도움 대활약을 펼쳤다. 그는 23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끝난 ‘하나은행 K리그1 2024’ 38라운드 수원FC와 시즌 최종전(울산 4-2 승)에서 2-2로 맞선 후반 28분 교체로 들어갔다.
앞서 K리그1 조기 우승이자 3연패를 확정한 김판곤 감독은 은퇴를 선언한 박주영이 마지막으로 홈 팬 앞에서 선수로 인사하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후반 39분 이규성과 원투 패스를 주고받은 뒤 상대 뒷공간을 파고든 박주영이 아타루의 결승골을 도왔다. 5분 뒤엔 이청용이 감각적으로 올려준 크로스를 골문 오른쪽으로 달려들며 논스톱 슛으로 연결, 쐐기포를 터뜨렸다.
플레잉코치 신분인 그는 지난 2년간 ‘코치 역할’에 주력했다. 실전 경기를 소화하지 않았다. 은퇴를 결심하고 지난 10일 친정팀 FC서울과 원정 때 이번처럼 교체로 들어가 이별 인사했다. 이날은 정식 은퇴 경기로 열렸는데 만화같은 활약을 펼친 것이다. 그가 골을 넣었을 때 반대 골문에 있던 골키퍼 조현우를 비롯한 동료는 물론 김 감독과 코치 모두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일부 팬은 눈물을 보였다.
게다가 은퇴 경기에서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100개를 돌파했다. 이전까지 99개였는데 골과 도움을 하나씩 추가했다. 박주영은 K리그 통산 287경기 77골24도움(정규리그 262경기 66골22도움·리그컵 22경기 10골1도움·플레이오프 3경기 1골1도움)을 기록하며 유니폼을 벗었다.
박주영은 “그저 선수들과 마지막으로 공 재미있게 차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골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청용이가 기가 막히게 올려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청용은 그가 은퇴 경기를 치르는 데 조력자 노릇을 했다. 둘은 과거 어린 시절 서울에서 함께 성장했고 대표팀 생활도 했다. 이청용은 “주영이 형이 마지막 경기에서 도움이든 골이든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는데 현실이 됐다. 득점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역시 승부사”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상대 수장 김은중 감독은 선수 시절 박주영의 프로 데뷔골을 어시스트한 인연이 있다. 김 감독은 “주영이 은퇴 자리에서도 내가 어시스트한 기분”이라며 “서울에서 밥 한 번 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주영은 ‘더 선수 생활해도 될 것 같다’는 취재진 말엔 “뛰는 게 힘들다. 이제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웃었다. 현역 은퇴 이후 진로에 대해서는 “우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기에 그런 부분을 더 얘기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천재는 천재답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