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나는 섬놈하고는 네버! 절대 안 살 거야!”

백파(흰물결)가 출렁이고 화사하게 꽃이 핀 제주 풍광을 배경으로 오애순(이지은 분)은 성이 났다.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감각이 좋아 시인을 꿈꿨지만, 워낙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대학 문턱을 꿈꾸기도 힘든 처지였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양관식(박보검 분)은 성에 차기엔 부족했다. 어떻게든 관식을 밀어내려 애를 쓰지만, 무쇠 같은 관식은 들은 척 못 들은 척 애순의 손을 꽉 잡고 있다.

10년 넘게 자기만 쫓아다닌 관식을 뒤로 하고 돈 많은 유부남과 결혼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지극한 순애보를 넘지 못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대신 하룻밤 사이에 덜컥 들어선 자식을 뜨겁게 사랑하기로 했다. 후회는 없다. 그것만으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 정말 많아서다. 등장하기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은 넷플릭스 오리진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4회 요약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배경을 그림처럼 낚아챈 김원석 PD의 연출력도, 빌런 하나 없이 사소하게 피어나는 욕심만으로 인생을 담아낸 임상춘 작가의 필력도 훌륭한데, 더 없이 빛나는 건 역시 이지은과 박보검 두 주인공이다.

이지은은 10대 섬 소녀로 변신했다. 일찍 데뷔해 빠르게 성숙해버려 깊은 내면을 주로 표현한 그에게 치기 어리고 왁자지껄한 얼굴은 처음이다. 이지은은 꿈을 이루고 싶어 발버둥 치는 애순을 훌륭히 표현해냈다. 애순은 어릴 적부터 야무졌던 덕에 공부도 잘했고, 꼭 시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육지 생활을 꿈꾸는 왈가닥 성격의 10대다.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배짱을 부리지만, 현실의 벽에 늘 부딪히는 형편이다.

이지은은 그간 쌓인 연기적 내공을 애순에게 모두 담아내는 모양새다. ‘호텔 델루나’ 장만월의 까칠한 면모부터 ‘최고다 이순신’ 이순신의 순수함, ‘보보경심 려’ 해수의 씩씩함, ‘나의 아저씨’ 이지안의 담담함과 깊이까지 엿보인다. 여기에 단단함도 덧입혔다. 또 색다르다. 결과적으로 오애순은 또 본 적 없는 이지은의 얼굴이다. 힘을 빼고 가볍게 내려놓고 또 하나의 ‘인생캐’를 만들었다.

엄마(오애순/문소리 분)를 쏙 빼닮아 날카롭게 말을 뱉는 양금명(이지은 분)에서도 매력이 전달됐다. 1960년대 10대 애순부터 1980년대 20대 금명까지, 대본을 깊게 연구하고 접근했다는 게 연기로 느껴진다.

애순이 럭비공처럼 통통 튄다면, 관식은 우직하다. 무쇠와 닮았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다. 늘 꾹 참고 버틴다. 어린 나이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도 분명하다. 옳지 않은 행동에는 당당하지 못한 순수함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가다 못해 배에서 뛰어내리는 용기도 갖고 있다. 그 용기가 애순에게 감동을 줬다.

늘 똑똑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그려온 박보검은 완전히 달라졌다. 묵묵히 책임을 다했던 우리네 아버지 얼굴을 담았다. 여느 남자처럼 무뚝뚝하게 툭툭 내뱉고, 기분 좋아지라는 흔한 말도 던질 줄 모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진심을 전하는 남정네다. 박보검이 우직하게 현실을 지탱해주자, 이지은이 매력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밸런스가 딱 맞아떨어진다.

두 배우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등장만으로도 희로애락이 전달된다. 시청자들은 풋풋하고 순수한 미소를 보고 있다 보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또 하나의 한국적인 이야기가 전 세계를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