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관식의 어린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에 나이대가 다른 두 배우가 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아이유와 문소리가 애순을, 박보검과 박해준이 관식을 맡았다.

◇꿈 많던 문학소녀 애순(아이유 분)은 엄마가 되고

문학소녀였다. 청마 유치환 시집을 끼고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깃발’)이라며 시를 줄줄 왰다. 서울로 대학도 가고 싶었다. 제주놈이랑은 결혼하지 않겠노라 선언도 했다. 시장에서 양배추도 팔지 못하는 숫기 없는 소녀였다. 꿈많고 글재주도 있었으나, 혈육인 엄마가 없어지자 자신을 향한 희망도 열정도 사라졌다. 이를 금명과 은명을 잘 키우는 것으로 승화했다.

아이유는 10대 소녀의 쾌활한 모습에서부터 결혼, 출산을 겪으며 엄마로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20세기 한국에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희생했고, 또 이를 인생의 굽이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이유 특유의 섬세한 감정변화로 보여줬다.

◇풍파에 단련된 애순(문소리 분)은 중년을 지나 할머니가 됐다

어릴 때부터 늘 ‘장(長)’이 하고 싶었다. 국민학교 때는 돈이 없어 ‘부반장’을, 어촌마을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부계장’ 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마음 속 깊이 품었던 꿈은 해녀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루게 된다. 시간이 흘러가며 여자에서 엄마로 변모하고, 그때마다 엄마 광례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

문소리의 연기는 기쁨과 슬픔 사이 언저리를 오간다. 자식이 크고 성취를 이루는 모습에선 행복감을, 삶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나오는 깊은 회한은 ‘한국의 어머니’상을 떠올리며 다시 우리들의 옛 이야기를 곱씹게 만든다.

◇‘무쇠’처럼 애순을 지킨 관식(박보검 분)은 아빠가 되고

관식은 무쇠다. 단단해서 어지간한 파고에 흔들리지 않는다. 애순이가 양배추를 팔 떈 “거기 양배추 달아요”라며 무심한 듯 돕는다. 남녀가 따로 밥상을 두고 먹던 시절, 몸을 반바퀴 돌려 애순의 밥상에 당도하는 장면은 애순에 대한 지고지순한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걸, 어른들 앞에서 선언한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박보검의 매력도 만개했다. ‘티없이 해맑은 미소’라는 수식어가 이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흰 치아를 드러내고 씩 웃는 모습에 빠져 들어간다. 대역 없이 바다 수영을 하고, 불평 없이 힘든 촬영을 떠받쳤다. 박보검의 연기도 관식이의 성품처럼 단단하고 온화했다.

◇ 어른이 된 관식(박해준 분)은 금명의 따뜻한 울타리가 됐다

나이 든 관식의 손은 까맣고 울퉁불퉁했다. 배를 타고 잡아올린 제주 앞바다의 물고기 수만큼 거칠어졌다. 금명의 상견례 자리에서 두손으로 받쳐 사돈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에선 딸 가진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를 대변해주는 아버지 모습 그 자체였다. “다음 생엔 내 아빠 하지마”라는 금명의 말에 “아빠 너 있어서 하나 안 힘들었어”라고 응수한다. “가진 게 100개면 120개를 주는 아빠”라는 그 말에 가슴은 또 괜시리 뜨거워진다.

박해준의 새로운 발견이다.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를 외치던 뻔뻔한 불륜남(‘부부의 세계’)의 태오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묻어나는 푸근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짙은 쌍꺼풀 아래로 반짝이던 눈망울 옆엔 주름과 흰머리가 희끗하게 묻어나고, 무릎이 아파 절뚝이는 걸음엔 관식의 세월까지 담겨 있다. 박해준의 연기에 절로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