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이치로 뛰어넘는 중거리 괴물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이치로의 등번호 51번은 메이저리그(ML) 역사를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숫자 중 하나다. 그리고 이제 이 번호는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상징이 되려 한다.
우상이었던 이치로처럼 ML 무대에서 활약하는 이정후는 단순히 닮고자 하는 것을 넘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 중이다.
13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3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이정후는 시즌 8번째 2루타를 터뜨리며 내셔널리그(NL)는 물론 ML 전체 2루타 부문 단독 1위에 올라섰다.
현재 기록은 타율 0.333에 출루율 0.404, 장타율 0.588, OPS 0.992다. 단순히 2루타를 많이 치는 것이 아니라, NL 타율 7위, 장타율 10위, OPS 8위에 이름을 올리며 리그 초반을 호령하고 있다.

◇이정후와 이치로, 장타 비율로 비교하면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통산 1181안타 중 244개가 2루타(20.7%)였다. 반면 이치로는 MLB 통산 3089안타 중 2루타는 362개(11.7%)에 불과하다.
장타 비율로 봐도 이정후는 29.8%(2루타+3루타+홈런), 이치로는 18.6%로 격차가 크다. ‘정확한 타격’에 ‘장타력’을 더한 이정후는, 내야안타로 승부를 보던 이치로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타자다.
이치로는 일본에서 20홈런 시즌을 두 번이나 기록했지만, ML 데뷔 후에는 장타보다는 정교함과 빠른 발로 안타를 쌓아갔다.
이정후는 다르다. 빠른 발보다는 정확하고 강한 타구로 내야를 뚫는 스타일이다. 이치로의 내야안타 비율이 12%를 넘었지만, 현재 ML의 내야안타 평균은 6% 남짓이다. 이정후는 현대 야구의 흐름에 더 적합한 진화형 타자다.

아직 이정후의 홈런은 드물다. KBO리그에서도 7년간 65홈런에 그쳤고, ML에서 20홈런 시즌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40개 이상의 2루타를 꾸준히 때릴 수 있다면, 이정후는 전통적인 ‘파워 히터’가 아닌 ‘중거리 타격의 롤모델’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정후는 올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핵심 타자다. 구단은 이정후의 콘택트 능력을 높이 사며 타순을 1번에서 3번으로 조정했고, 이정후는 기대에 부응하듯 장타 생산과 함께 타점을 쌓아가고 있다.
이정후의 성공은 단순히 개인 커리어에 그치지 않는다. 강정호, 김하성에 이어 ‘한국 야수의 미국 도전기’는 이제 이정후라는 새로운 챕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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