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그 시 아세요?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이다. 홍화연의 눈가에 깃든 눈물이 마치 시의 한 구절 같았다. SBS 드라마 ‘보물섬’에서 서동주(박형식)를 떠나보낸 여은남의 엔딩을 두고 홍화연은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짓는 미소는 여운이 짙었다.

홍화연이 연기한 여은남은 ‘보물섬’에서 사랑의 서사를 관통한 인물이다. 극의 전면에서는 서동주와 염장선(허준호)의 대결 구도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했다면, 그 안쪽에서 감정의 균형을 잡은 건 여은남이었다. 사랑과 배신, 원망과 증오를 거쳐 결국 순수로 회귀하는 인물. 홍화연은 ‘보물섬’에 다다르는 그 복잡한 감성의 여정을 정교하게 구축해 극의 밀도를 높였다. “은남과 이별하는 건 아쉽지만, 많은 사랑을 받아서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홍화연은 은남을 기술적으로 연기하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이입했고, 은남과 동화됐다. “대본에는 없는 은남의 과거를 마치 진짜 꿈을 기억하듯 떠올리며 연기했다”는 말처럼, 홍화연은 은남의 심리를 내면에서 접근해 재구성했다. ‘연기 연습’이라는 말보다는 ‘감정의 공유’에 가까웠다. “대본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은남이 왜 이 말을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계속 고민했다”는 말은 그가 연기 비전공자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극 중 명장면 중 하나가 은남이 증오하는 가족 앞에서 차분하되, 냉정하게 읊조리던 대사다.

“그거 알아요, 엄마? 서동주, 미련 없이 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모양 이 꼴이에요. 어쩌면 좋죠?”

홍화연은 감정을 과잉하지 않았다. 절제된 표정과 낮은 톤, 찰나의 호흡까지. 그러나 정확하게 조율된 감정의 세기가 울림을 만들어냈다. 학습 받은 연기로는 빚을 수 없는 파동이었다. 끊임없이 인물의 내면을 정리하고, 감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던 홍화연의 열의가 이끈 장면이었다.

홍화연의 힘은 진심이다. 시청자들이 여은남에게 설득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에 대한 신뢰, 감정에 대한 직관, 그리고 솔직하게 연기하겠다는 자세. ‘보물섬’은 홍화연이 평생토록 지켜온,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온전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원래의 꿈은 교육자였다. 건국대학교 교육공학과 출신인 홍화연은 “교육은 따뜻한 학문이다”라는 교수의 말을 듣고 인생의 가치관을 재정립했다. 사람은 가르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그에게 확신처럼 자리잡았다. 지금은 배우의 길에 들어섰으나, 배우가 된 현재의 삶에도, 그의 연기에도 여전히 같은 철학이 녹아있다.

‘지금 마음가짐을 앞으로도 잃지 않겠다’는 다짐. 홍화연을 신인 연기자로 발탁한 BH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우리가 뒤에 있을게. 넌 걸어만 가”라고 격려했다. 홍화연이 낯선 길을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저를 믿고 뽑아주신 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었어요. 잘하고 싶었어요.”

눈물이 많은 배우다.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한다”고 했다. 가장 아끼는 책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다. “이렇게까지 불행하지만 사랑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뒤로 하고 소중한 ‘보물섬’이 저 멀리 사라졌다. 다만, 그 섬에서 발견된 신예 홍화연만큼은 우리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린 이제 여은남 없이도, 홍화연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