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주상기자] 4월 6일은 한국파이터 이창호의 날이었다.
이창호는 지난달 6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UFC 에이펙스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에멧 vs 머피’에 출전해 옥타곤 데뷔전을 가졌다.
이창호는 ROAD TO UFC 시즌 2 밴텀급 준우승자로서 UFC 무대를 밟았고, 데뷔전에서 코르테비어스 로미어스를 2라운드 3분 48초에 엘보 TKO로 물리치며 격투기팬은 물론 UFC 관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창호는 화끈한 경기로 ‘퍼포먼스 오브 더 나이트’로 선정되며 보너스 7330만원도 거머쥐었다. UFC 밴텀급(61.2kg) 챔피언 메랍 드발리쉬빌리도 이창호의 경기력을 극찬할 정도로 완벽한 데뷔전이었다.
이창호는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전진했다. 넘치는 압박에 거친 돌격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펀치와 그래플링의 환상적인 조합은 신인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창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전략을 잘 짜주셨다. 팀 동료들이 하도 괴롭혀준 덕에 많이 성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새로운 별명인 ‘K머신’을 소개했다. 이창호의 롤모델인 무한체력을 자랑하는 UFC 밴텀급 챔피언 메랍 드발리쉬빌리의 별명인 머신 앞에 한국을 뜻하는 K를 붙였다. 이창호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더 열심히 해서 ‘코리안 머신’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원조 ‘머신’ 드발리시빌리가 직접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훌륭한 경기였어, 코리안 머신’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창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UFC에서 붙여주는 대로 싸우겠다. 한 단계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이창호와의 일문일답이다.
- 데뷔전에서 승리한 소감은 어떤가?
확실히 화끈하게 이겨서 응원도 많이 받았고, 주목을 받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 RTU 기본 대전료가 높은데다가 보너스까지 받아서 역대급 대전료를 받게 됐다. 혹시 플렉스할 계획이 있는가?
플렉스 계획보다는 돈을 모으면서 훈련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다음 경기를 위해서 나 자신에게 투자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 환경적인 부분이랑 운동적인 부분에서 몸의 기능 같은 걸 향상시키기 위해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려고 한다. 스트렝스 앤 컨디셔닝 훈련도 아직 받아보진 않았는데 이제는 받아볼까 생각 중이다.
- 격투기 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었나? 이렇게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낸 뒤에는 어떠신가?
맨 처음에 격투기 선수를 한다고 했는데 열심히 해라, 멋있다, 신기하다 같은 반응이었다. 가족들은 반대가 많이 심했다. 진짜로. 왜 이렇게 위험한 운동을 하냐고 하셨다. 모든 부모님은 자식이 다치는 걸 싫어하시기 마련이다. 다칠 가능성이 높은 운동이다 보니 걱정 많이 하시고, 반대를 하셨다. 하지만 ROAD TO UFC하기 전부터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신다. 요즘에는 운동 안 한다 그러면 오히려 잔소리 하실 정도다.
옛날 친구들 연락도 엄청 온다. 친척분들도 TV로 생중계 보고 응원해준다.
- 코르테비어스 로미어스의 파워가 강했는데, 초반부터 먼저 압박을 거는 게 전략이었나?
꼭 그렇진 않았다. 내가 스타일이 화끈하다 보니까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체력 부분에서 자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불꽃 튀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 로미어스가 무리한 서브미션 시도를 하며 포지션을 계속 내줬다. 이것도 예상했던 바인가?
그것도 예상했던 부분이다. 이전 경기를 여러 번 확인해 봤는데 확실히 주짓수나 서브미션 캐치 능력은 좋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조심했다. 암바나 초크를 좋아하기 때문에 분명히 나한테도 서브미션을 걸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빠르게 대처하려고 했다.
- 파운딩이 엄청나게 강력하다. 스탠딩 타격 파워도 강할 거 같은데 어떤가?
커리어상 스탠딩에서 KO를 내본 적이 없다. 나도 내 자신의 타격 파워가 궁금하긴 하다. 시합을 통해서 발전하는 선수기 때문에 다음 경기나, 다다음 경기에선 타격전에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 강력한 파운딩으로 피니시를 노리기에 포지션 컨트롤이 조금은 불안정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그 부분에서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역전당할까봐 불안하기도 할 거다. 그래도 난 일어나도 또 넘겨서 또 때리면 된다는 마인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대미지를 주고 싶다. 심판들이 봤을 때도 어그레시브한 점이 더 부각될 거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많이 때린다.
- 타고나길 인자강인 거 같다. 어렸을 때는 본인이 약했다고 했는데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었는가?
스포츠 중에선 격투기를 처음 했고, 다른 운동에서 두각이나 그런 건 없었다. 운동신경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대신 노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다. 축구, 농구는 아예 못해서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조용히 수다 떨거나 그런 생활을 때렸다. 요즘 친구들이 정말 많이 놀란다.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 혹시 내가 미래의 UFC 파이터가 될 인자강이 아닐까 깨닫게 됐나?
지금도 스스로 내가 강하다고 생각은 안 한다. 격투기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쭉 올라가는 게 아니고 천천히 올라간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신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한다. 언제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잘하는 부분에서 디테일하게 더 가다듬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 이창호 선수의 커리어 자체가 언더독 신화라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홀로 RTU에서 우승했고, UFC에서도 승리했다.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선수로서 발전을 이끌었다 보는가?
맞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무조건 갖고 있다. 격투기라는 게 케이지에서 실력을 증명하는 게 일순위다. 처음에는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고, 주목을 못 받았지만 올라가서 무조건 증명하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경기 후에 메랍 드발리쉬빌리가 트위터로 칭찬했다. 기분이 어땠나.
솔직하게 이제 갓 1전 뛴 신입사원인데 사장님이 알아봐주는 느낌이다. 엄청 놀랐다.
- 전 UFC 미들급 챔피언이 코리안 하빕이라고 했는데, 코리안 메랍을 강조했다. 아무래도 메랍 쪽을 더 선호하는가?
두 선수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도 지금은 같은 체급의 현역 챔피언이 메랍이니까 그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많이 받는다. 목표로 삼는 선수이기에 언급했다.
- 메랍이랑 같이 훈련하자고 해볼 생각도 있는가?
그런 계획도 있다. 보고 배울 게 정말 많은 선수이기 때문에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 RTU 준결승, 결승 두 경기보다 훨씬 쉽게 이겼다. RTU의 경쟁 수준이 결코 낮지만은 않은 거 같다.
ROAD TO UFC가 4시즌까지 됐는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도 RTU 때보다 더 성장을 했다고 느낀다.
- 6, 7개월 사이에 3경기를 치르고, 무조건 우승해야 UFC와 계약할 수 있다는 포맷이 선수로서의 성장을 이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시합이 끝나고도 경기가 미리 잡혀있고 상대를 알기 때문에 마냥 안주하면서 기쁨을 만끽할 수 없다. 경기 끝나고 1~2주만 쉬고 다시 시합 모드로 들어갔다. 1년 내내 긴장감 속에서 훈련하면서 더 단단해진 거 같다.
- 이번에는 얼마만에 훈련에 복귀했나?
한 4일 만에 복귀했다. 엄청 강한 강도는 아니지만, 아예 안 가진 않고, 단 10%라도 얻을 게 있다면 무조건 체육관 나가서 훈련하다.
- 전 TFC 페더급 챔피언 김재웅이라는 한국 최고의 선수 중 하나와 훈련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김재웅의 강력한 펀치까지 흡수하면 더 강해질 거 같은데?
내가 많이 보고 배워야 되는 형님이다. 아직도 내가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해서 형하고 같이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 앞으로 경기 계획이나, 원하는 상대가 있다면?
일단 많이 뛰고 싶다. 아직 내가 1전이다 보니까 원하는 상대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좋은 선수를 만나서 내가 더 증명하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 사실 RTU 우승자에게는 두 번째 경기부터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나카무라 린야를 제외하면 모두 2전째에 졌고, 린야도 3전째에 꺾였다. 앞으로 어떤 점을 더욱 발전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나?
당연히 기술적인 부분에서 향상을 해야 한다. 피지컬적인 부분도 더 단단해져야 한다. 긴장감이나 압박감 속에서 차분하고, 여유 있는 느낌을 가져야 될 거 같다.
- 유수영 선수도 이번에 경기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라이벌 구도로 포지셔닝하기도 했는데 서로 좋은 자극을 주고받는 동료 관계로 볼 수 있는가?
맞다. 나도 보고 배울 점도 많고, 기술적인 부분도 훨씬 좋다. 경기도 안정적으로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보고 배울 점도 많다.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되면 합동 훈련도 하고 싶다.
- 별명을 개미지옥에서 블랙홀로, 블랙홀에서 개미지옥으로 다시 K-머신으로 바꿨다. 이번 별명은 쭉 갈 건가?
쭉 갈 거 같다. K-머신이란 별명이 입에 착 감긴다. 등장 음악이 여자 음악을 많이 틀기 때문에 K-팝 K-머신 효과를 보는 거 같다.
- 에스파의 ‘슈퍼노바’와 ‘위플래시’를 연달아 등장곡으로 틀었다. 좋아하는 K-POP 가수는 역시 에스파인가?
아이돌을 특정지어서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도 여자 아이돌 노래가 신나기도 하고, 좋기 때문에 분위기도 올라온다. 어떤 그룹을 좋아해서 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
- 이번 ROAD TO UFC 시즌 4에서 주목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한국 선수들이 페더급, 라이트급에서 많이 나오더라.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모두 다 기대하고 있다.
- 이름이 같은 바둑의 전설 이창호 9단은 바둑계의 GOAT다. 본인은 MMA 몇 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9단이 되기 위해서 갈고 닦아야 할 거 같다.
- 이창호 9단에게 조훈현 9단이 있다면 이창호 선수에겐 조정현 감독님이 어떤 의미인가?
나를 다시 새롭게 만들어준 스승님이자, 감독님이다. 2022년 여름부터 함께 했다. 이제 3년 정도 됐다. 그 3년의 세월 동안 내가 정말 많이 변했다. 감독님은 선수들마다 개개인마다 성향을 보고, 그에 맞는 훈련을 짜주신다. 그리고 그 어떤 감독님보다도 미트를 많이 잡아주신다. 선수들이랑 스파링 할 때 조언도 항상 해주신다. 저녁에 매일 선수부 수업이 있다. 거기에서 연구한 기술을 알려주신다. 그럼 그걸 배우고 선수들끼리 스파링에서 써본다. 너무 좋은 거 같다.
- UFC에서의 앞으로의 로드맵이 있다면?
2, 3년 안에는 랭킹 15위권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막 1전을 치른 이창호다. 훈련에 매진해서 더 좋은 경기력 보여드리겠다. rainbow@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