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캣츠아이(KATSEYE)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 입성했다. 신곡 ‘날리(Gnarly)’로 빌보드 ‘핫 100’ 92위에 첫 진입했다. 데뷔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K팝 제작시스템으로 길러진 글로벌 팀이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인 미국 본토에서 성과를 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캣츠아이는 일명 ‘K팝 방법론’을 글로벌 시장에 이식한 다국적 걸그룹이다. 하이브의 T&D(트레이닝&디벨롭먼트) 시스템을 기반으로 했다. 체계적인 육성 구조, 팬덤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 K팝 핵심 성공 요소를 현지화했다. 이번 ‘핫 100’ 진입은 K팝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순간이다.
캣츠아이가 주목받는 이유도 분명하다. 서구권 음악 시장에 없던 포지션이다. 미국, 영국 등 서구 주류 음악계에서 퍼포먼스 중심의 여성 그룹은 오랜 시간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스파이스 걸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여성 아티스트의 트렌드는 솔로였다. 파워풀한 군무와 팀워크를 내세우는 여성 그룹은 K팝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캣츠아이는 K팝식 걸그룹 구조로 서구 시장에서 성공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날리’의 성과가 단지 음원의 힘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캣츠아이는 ‘엠카운트다운’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인기가요’ 등 국내 음악방송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이 음악방송에서 펼친 도발적인 표정 연기와 역동적인 안무는 기존 K팝 걸그룹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호응을 촉발했다.
가사 구성도 전략적이다. 버블티, 테슬라, 프라이드 치킨 등 10대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키워드를 나열하며, 이를 ‘날리’라는 감탄사로 연결시키는 구조다. 짧지만 강렬해야 하는 숏폼 중심의 트렌드에 최적화돼 있다. ‘날리’라는 단어의 청각적 특성도 흥행에 일조했다. 영어권에서 ‘날리(Gnarly)’는 ‘끝내주는’ ‘멋진’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한국어 ‘난리’와 유사한 발음으로 들리며 즉각 귀에 꽂히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중요한 것은 캣츠아이의 전략이 출발부터 정교하게 설계돼 있었다는 점이다. 하이브 의장 방시혁은 캣츠아이 선발 프로젝트 ‘드림 아카데미’ 때부터 K팝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강조해왔다.
방시혁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미국 음악 시장에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아직 있는지, 열정적이고 젊은 팬층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서 캣츠아이 데뷔 앨범의 성공을 통해 “그 시장의 존재가 증명됐고, 이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K팝이 더 이상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시스템 자체로 세계 시장에서 작동 가능하다는 방시혁의 신념이 일정 부분 입증된 셈이다.
캣츠아이는 지금까지 K팝이 시도해온 해외 진출과는 방식이 다르다. K팝 아티스트가 아닌 시스템을 진출시켰다. 캣츠아이가 글로벌 시장에 자리잡는다면, 이들은 K팝 시스템이 세계 음악 산업의 중심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첫 주인공이 될 것이다. roku@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