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tvN ‘미지의 서울’ 속엔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얼굴은 완벽에 가깝게 똑같은 데 성격은 천지차이다.

한 명은 퉁퉁거리는 것 같지만, 힘든 걸 꾹 버티는 장녀 유미래, 또 한 명은 쉴 새없이 조잘조잘 떠들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나 속은 은근히 여린 차녀 유미지다. 서로 쉴새없이 싸우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서로를 위하고 있다. 그러다 미래가 회사 내 심각한 집단 따돌림으로 괴로움에 시달리자, 미지가 미래 대신 회사를 다니게 됐다. 이른바 ‘인생 체인지’를 한 것. 그러면서 서로에게 몰랐던 속사정과 마주한다.

배우가 연기하기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차가우면서 속 깊은 미래와 발랄하면서도 여린 미지를 오갈 뿐 아니라 미래가 된 미지, 미지가 된 미래까지 총 4인을 연기해야 한다. 미래 안에서 미지가 툭 튀어나와야 하고, 미지에게서 미래가 나와야 한다. 뿌리 탈색을 안 한 노란 머리 유미지와 곱게 긴머리를 묶은 유미래의 헤어스타일처럼, 상반된 이미지를 절묘하게 겹쳐야 하는 미션도 있다.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닌 20대 초년병이 냉혹한 사회 안에서 겪는 다양한 갈등을 세밀하게 그리기 때문에 배우에게 주어진 임무는 더 크다. 연극적이기보단 현실에 딱 붙어있는 생활형 캐릭터다 보니 감정을 마구 끌어올려서도 안 된다.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실낱같은 미묘한 지점을 놓치지 말고 딱딱 짚어내야 한다.

배우 박보영이 이 어려운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다.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유지하면서, 말 한 마디에 빈정상하고 휙휙 변해버리는 20대 여성의 기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편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바이브도 적절하다.

쌍둥이는 각자 다른 성격에서 비롯된 아픔과 트라우마를 점점 알게 된다. 두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며 화합하는 과정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끔 연기하고 있다. 차가우면서도 속 깊고 밝으면서도 쓰린 온갖 감정이 박보영의 얼굴에서 다채롭게 발현되는 것. 미래로 살아가는 미지나, 미지로 살아가는 미래 모두 조금씩 상대의 삶 속에서 그동안 몰랐던 걸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늘 연기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쉬운 길을 두고 되도록 어려운 역할에 도전하며 내공을 쌓았던 박보영의 경험이 ‘미지의 서울’을 통해 온전히 펼쳐지는 모양새다. 박보영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이 대본을 보고, 제 인생에 다시 없을 도전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 언제 내가 도전할 수 있을까, 지금 아니면 나에게 기회가 올까?’란 생각이 들었다. 1부 엔딩에 ‘내가 너로 살게 넌 나로 살아’라는 대사를 보고 이 드라마를 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속에 담긴 어려운 미션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로 여겨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훌륭히 1인 4역을 매끄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 겨우 4회까지 나온 ‘미지의 서울’은 점점 이야기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분명 더 어려운 미션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박보영이라서 안심이 앞선다. 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