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영영 할머니일지라도”…원미경의 용기와 아름다움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젊은 박보영보다 늙은 원미경이 더 아름답다.”
국내 최고의 카피라이터 중 한 사람인 정철이 꺼낸 말이다. 화제가 된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본 그는 쌍둥이 자매를 연기한 박보영에게 박수를 보냈고, 동시에 그보다 더 깊은 감탄을 원미경에게 돌렸다.
정철은 “평생 매력적인 여주인공이었던 그녀가 실제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분장을 하고 시청자 앞에 선다는 게 쉬웠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예쁜 척하지 않고 늙은이가 된다. 그게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자신의 SNS에 적었다.
드라마 속 원미경은 닭내장탕집 사장 ‘현상월’로 등장한다. 그는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불친절한 장사꾼이자, 세월을 얼굴에 고스란히 새긴 인물이다. 원미경은 고단한 삶을 살아온 이 캐릭터를 조용하지만 깊은 내공으로 빚어냈다. 정철은 “그녀의 주름도, 어눌한 말투도, 걸음걸이도 아름다웠다. 늙음이 아니라 새로움을 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원미경은 1980년대부터 멜로극의 중심에서 활약해온 ‘정통 여주인공’의 계보를 잇는 배우다. <사랑과 진실>, <행복한 여자>, <사랑의 종말> 등 국민 드라마의 주역이었고,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지금의 원미경은 과거의 화려함에 기대지 않는다. 정철의 표현처럼 “조용한 숨결 하나, 시선의 결 하나”로 인물의 내면을 길어 올리고, 세월에 굴복하지 않는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한편 <미지의 서울>은 지난 29일 최고 10% 시청률을 기록하며, 찬란한 엔딩을 내렸다.

전문(정철)
원미경이 아름답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본다. 많은 사람들이 쌍둥이 박보영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도 기꺼이 박수를 보탠다. 그런데 내 눈엔 젊은 박보영보다 늙은 원미경이 더 아름답다.
평생 매력적인 여주인공이었던 그녀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분장을 하고 시청자 앞에 서는 게 쉬웠을까. 쉬웠을 리 없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예쁜 척하지 않고 늙은이가 된다. 나 분장 지우면 이 할머니보다 훨씬 젊고 예뻐요, 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영원히 할머니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온몸으로 말한다.
아름답다.
얼굴을 덮은 주름살도 아름답고 어눌한 말투도 아름답다. 그녀의 표정에서, 한숨에서, 걸음걸이에서 내가 본 건 어쩌면 늙음이 아니라 새로움이었을 것이다. 젊음이 소진되면 비로소 얻게 되는 늙음은 분명 새로움이다.
<미지의 서울>은 참 괜찮은 드라마다. 가족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질문을 던진다. 답을 알면서도 그 답을 선뜻 써 내지 못하고 사는 내겐 하나하나가 아픈 질문이었다.
물론 드라마의 모든 면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나는 이 드라마에 두 가지 불만이 있다. 나도 닭내장탕 한번 먹고 싶은데 왜 원미경은 1인분은 팔지 않을까. 혼밥 자주 하는 내겐 이게 제1불만이다. 제2불만은 식당 벽에 보일락 말락 세로로 써 붙여 놓았는데 나는 보고 말았다. 술 일절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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