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마치 오래된 나무가 해마다 조금씩 높이를 더하듯, 천천히 단단해진 배우가 있다. 배우 이레의 이야기다.

2012년 채널A 드라마 ‘굿바이 마눌’로 데뷔한 이후, 쉼 없이 달려왔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지옥’ ‘무인도의 디바’, 영화 ‘소원’ ‘반도’에 이르기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한 작품 한 작품 자신만의 색을 쌓아왔다.

아역 시절부터 다양한 캐릭터로 묵직한 감정선을 소화해내던 이레가 이제는 스스로의 온도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성인 배우로 성장했다.

그 출발점은 tvN 월화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다. 전직 협상가이자 현 치킨집 사장 신사장(한석규)이 각종 분쟁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드라마다. 정의의 무게와 일상의 웃음을 동시에 품은 이야기 속에서, 이레는 생활력 만렙의 배달 요원 이시온을 연기했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이레는 “요즘 ‘신인 배우인 줄 알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그 말이 좋다. 자연스럽게 봐주신다는 게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시온을 단순히 강한 사람으로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겉으론 당당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여린 친구예요. 그래서 상처를 강조하기보다 ‘그걸 이미 견뎌낸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레는 캐릭터를 체화하기 위해 실제 원동기 면허를 땄다. 땀과 먼지, 배달 가방의 무게까지 직접 체험하며 몸의 리듬을 익혔다. 카메라 앞에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짜가 되어버리는 과정이었다.

“연기라는 게 결국 ‘살아내기’잖아요. 시온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이에요. 그게 화면 속에서도 느껴졌으면 했어요.”

이레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로맨스 연기에 도전했다. 상대역은 또래 배우 배현성이었다. 두 사람은 극 중에서 티격태격하며 부딪히다 정이 스며드는 청춘의 감정을 그려냈다.

“오빠가 정말 배려심이 많아요. 현장에서 저를 편하게 해줬어요. 처음엔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너무 고마웠죠.”

이레에게 ‘성인 연기자’라는 말은 그저 새로운 타이틀이 아닐까. 이레는 그것을 화려한 전환점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20대를 조급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꾸준히 다듬으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열아홉 살의 마지막 날처럼, 스무 살의 첫날도 평범하게 보내고 싶었어요. 어른이 됐다는 건 어떤 이미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배움의 시기예요. 더 잘하려 하기보단, 진짜로 느끼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시온처럼 버티고, 웃고, 다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표예요.”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