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시대다. 탄광이 문을 닫자, 지역은 활기를 잃었다.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의 동력이었던 ‘검은 땅’은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다시 희망을 캔다. ‘K-HIT 프로젝트’는 폐광촌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거대한 반전이다. 스포츠서울은 이 역동적인 변화의 현장을 1년간 기록한다. 총 24부작으로 기획된 ‘다시 피어나는 검은 땅’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정선·태백·영월·삼척의 사계절 비경과 강원랜드의 상생 로드맵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긴 호흡의 여정이다. 검은 석탄 가루가 걷힌 자리에 피어나는 문화와 치유의 꽃, 그 생생한 1년의 기록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주>
정선 하이원리조트 입춘 지났지만 마운틴 탑은 영하 10도
“질척이는 눈? 편견일 뿐”…일 2회 정설·데이터 관리가 만든 ‘뽀드득’ 설질
리프트 대기 ‘0분’, 광활한 슬로프 독차지하는 짜릿한 카빙의 맛

[스포츠서울 글·사진 | 정선=원성윤 기자] 달력의 숫자가 2월로 넘어가고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이곳의 시계는 여전히 한겨울의 절정에 멈춰 있다. 강원도 정선, 해발 1340m 하이원 리조트의 마운틴 탑. 곤돌라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발아래 펼쳐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은백색의 카펫, 그리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스키어들의 원색 물결이다.
스포츠서울은 연중 기획 ‘다시 피어나는 검은 땅’의 첫 번째 여정으로, 폐광 지역의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하이원 스키장의 늦겨울 풍경을 담았다.
◇ 멈춤 없는 질주, 슬로프를 온전히 누리는 ‘힐링 라이딩’


“지금이 진짜 스키 시즌이죠.”
슬로프 하단에서 만난 스키어들은 2월의 스키장을 ‘숨겨진 보석’이라 불렀다. 12월과 1월의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은 한풀 꺾였고, 따스한 늦겨울 햇살 아래서 즐기는 라이딩은 한결 여유롭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기다림 없이 오로지 라이딩에만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이다. 성수기 주말, 많은 인파 속에서 리프트 탑승을 기다려야 했던 번거로움은 사라지고 활강의 즐거움만 남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곧장 리프트에 오르면, 지체 없이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


광활한 슬로프는 스키어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넓은 무대가 된다. 다른 스키어들과 부딪힐 걱정 없이 나만의 궤적(Carving)을 그릴 공간이 충분하다. 탁 트인 시야 속에서 속도감을 만끽하며 눈보라를 일으키는 쾌감, 이것이 진정한 늦겨울 스키의 묘미다.
특히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코스 구성은 하이원의 자랑이다. 정상에서 시작되는 4.2km 길이의 ‘제우스’ 코스는 초보자도 백두대간의 풍광을 즐기며 여유롭게 롱런을 즐길 수 있고, 중상급자들은 ‘헤라’ 코스에서 가파른 경사를 가르는 짜릿한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다.
◇ “뽀드득” 소리의 비밀…첨단 제설과 장인 정신

많은 이들이 2월 말이면 기온 상승으로 눈이 녹아 질척일 것이라 걱정하지만, 하이원의 설질은 여전히 ‘최상급’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치열한 데이터 관리 노하우에 있다.
하이원 리조트 관계자는 “자체 기상 데이터 분석 결과, 고지대 특성상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도 마운틴 탑의 기온은 영하 10도에서 영하 5도 사이를 유지하는 날이 많다”며 “특히 늦겨울에는 낮 동안 녹았던 눈이 밤사이 다시 얼어붙는 아이스반(빙판) 현상을 막기 위해 정설 작업에 더욱 공을 들인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눈을 다지는 수준이 아니다. 리조트 측은 ‘일 2회 이상 정설’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야간 스키가 끝난 심야 시간, 12대의 거대한 정설차(Snowcat) 군단이 슬로프를 누비며 결빙된 표면을 걷어내고 속눈과 혼합하는 작업을 밤새 진행한다. 여기에 팬(Fan) 타입 제설기가 보강 제설을 통해 신선한 눈을 덮어주면, 다음 날 아침 스키어들은 발밑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는 최상의 파우더 설질을 만날 수 있다.
◇ 백두대간을 발아래 두고…마운틴 탑의 절경

스키를 타지 않더라도 곤돌라를 타고 정상인 ‘마운틴 탑’에 오를 이유는 충분하다. 해발 1340m 정상에 서면 발아래로 첩첩산중 뻗어 나가는 백두대간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운이 좋은 날이면 산허리를 휘감는 운해(雲海) 위로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이 마치 바다 위의 섬처럼 떠 있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정상 곳곳에는 즐길 거리도 풍성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붉은색 대형 하트 조형물은 연인들의 필수 포토존이며, 360도 회전 전망대 카페에서는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설국을 감상할 수 있다.
◇ 얼어붙은 몸 녹이는 ‘미식(美食)’의 위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하이원 리조트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맛’이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슬로프를 누빈 뒤, 맛보는 따뜻한 한 끼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위로가 된다.
허기진 스키어들을 위해 마운틴 카페테리아에서는 수준급의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진하고 뽀얀 육수에 차슈와 계란, 아삭한 파를 듬뿍 얹은 일본식 라면은 스키어들 사이에서 인기 메뉴다. 따끈한 국물 한 모금이면 얼어붙었던 몸이 눈 녹듯 풀린다.
든든한 육류를 선호한다면 돈가스가 제격이다. 바삭하게 튀겨낸 두툼한 고기 위에 소스를 듬뿍 뿌리고, 해쉬브라운과 샐러드를 곁들인 돈가스 정식은 오후 라이딩을 위한 완벽한 에너지원이다. 훌륭한 설질 위에서 땀 흘린 뒤 맛보는 음식은 그 어떤 맛집보다 꿀맛이다.
◇ 안전엔 ‘마침표’가 없다…빈틈없는 시스템 점검

늦겨울 스키는 스피드를 즐기기 좋은 만큼 안전사고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이원 리조트는 시즌 막바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안전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패트롤 대원들은 수시로 슬로프를 오르내리며 펜스 등의 안전 시설물을 점검하고, 노면 상태를 확인한다. 특히 기온 상승으로 인해 눈이 습해져 스키 제어가 어려워질 수 있는 오후 시간대에는 안내 방송과 순찰을 강화해 안전 운행을 유도하고 있다. 리조트 내 의무실과 후송 체계 또한 24시간 비상 대기 체제를 유지하며 스키어들의 안전한 질주를 뒷받침한다.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탁 트인 은빛 설원 위에서 늦겨울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장비를 챙겨 정선으로 떠나야 할 때다. 하이원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