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은 선율을 남긴 작곡가 이영훈이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났다. 그는 2008년 2월 14일 오전 3시, 대장암 투병 끝에 향년 47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영훈은 2006년 초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두 차례 수술을 거쳤고, 같은 해 10월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모르핀으로 고통을 견디며 투병 생활을 이어갔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부인 김은옥 씨는 당시 “그는 ‘천국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수없이 많다. 영감을 얻는 그 순간 천국에 있는 멜로디를 하나씩 꺼내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라면서 생애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남긴 말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가득한 하늘에 가는 것이 행복하다’였다”라고 전했다.

이영훈은 생의 끝자락까지도 창작 의지를 놓지 않았다. 대표곡 ‘광화문 연가’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제작을 준비해왔고, 이후 해당 작품은 무대에 오르며 그의 음악 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가수 이문세다. 두 사람은 1985년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시작으로 한국형 팝 발라드의 시대를 열었다. ‘사랑이 지나가면’,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붉은 노을’까지 수많은 히트곡이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문세 3집은 150만 장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다. 4집은 285만 장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5집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해 최종 258만 장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앨범까지 더하면 700만 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 가요계에서 보기 드문 폭발적 성과였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는 대중가요에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1999년 12집, 2001년 13집은 이전만큼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을 둘러싼 불화설이 돌았다. 왕래가 뜸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문세는 쇼케이스 자리에서 “생각이나 취향은 달랐지만 음악적 동반자였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진실은 통한다고 믿는다”고도 밝혔다.
10주기 당시 이문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영훈씨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25살, 이영훈씨는 24살이었다. 노래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니 우리가 얼마나 신났겠나. 작업실에 찌들어있는 그 시간조차도 정말 행복했다. 요즘 가요계에선 한 달, 짧으면 일주인 사이에 발표됐던 노래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를 만들었으니 이 사람, 참 뿌듯할 것이다. 아마 이 자리에 있었다면 관객에게 큰절을 올리지 않았을까. 제가 대신 인사드리겠다. 감사합니다.”
고인의 친구이자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방송인 김승현은 “영훈이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항상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던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광화문 연가’의 멜로디는 여전히 거리 위를 흐른다. ‘옛사랑’과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세대를 건너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다. 계절이 바뀌어도, 세대가 달라져도, 그의 선율은 한국 대중음악의 한 페이지를 지키고 있다.
kenny@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