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사랑은 언제나 충만한 이들의 전유물처럼 소비된다. 아름답고, 건강하고, 세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관계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결핍을 지니고 스스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 인물들의 사랑을 그린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하는 ‘파반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경록(문상민 분)과 미정(고아성 분)이 있다. 두 인물은 모두 결핍을 품고 살아간다.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 담을 쌓은 채 각자의 세계에 고립돼 있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른다.

영화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경록과 미정의 만남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만남도, 화려한 서사도 없다. 대신 갓 스무 살이 된 이들의 서툰 시선과 조심스러운 침묵이 자리를 채운다.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성장 서사로 그려낸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결핍을 인정하게 한다. 경록과 미정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마주한다. 사랑이란 감정이 결국 타인을 향하기 이전에 자신을 향한 수용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요한(변요한 분)의 존재는 결정적이다. 요한은 경록과 미정을 하나로 엮는 인물이자 작품의 윤활제다. 원작 속 특유의 ‘돌아이’ 같은 감성을 자연스럽게 구현해낸 변요한은 극의 무게를 적절히 덜어낸다.

경록과 미정의 사연이 무겁게 가라앉을 때마다 요한은 특유의 엉뚱함으로 화면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의 대사와 행동은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에 가깝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숨 가쁜 현실 속 위로로 작용한다.

작품에서 요한은 오작교이면서도 관찰자이고, 해설자가 된다. 그는 극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변요한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기는 캐릭터의 입체감을 극대화한다.

연출 측면에선 익숙한 멜로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진부하게 흐르지 않는다. 이종필 감독은 절절한 멜로 감성보다는 덤덤한 사랑을 그린다. 결말부에서 원작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면 영화 속 결말은 해피엔딩인 듯 아닌 듯 열린 결말로 시청자에게 마지막 선택을 넘긴다. 그래서 이야기의 완성은 화면 밖에서 이루어진다. 세 사람의 서사에 관객 역시 하나의 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현대로 각색된 설정 역시 흥미롭다. 원작의 배경이 80년대 중반이었다면 영화는 현재 시점으로 그려지면서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섬세하게 유지한다. 세 인물의 아지트인 ‘켄터키 호프’는 그 상징적 공간이다. 낡은 간판, 촌스러운 조명, 어딘가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는 인물들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이러한 미장센은 과거 사랑받았던 멜로 공식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그러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정서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작품의 설득력을 견인한다. 문상민은 경록의 고립된 내면을 말보다 침묵, 행동보다 시선으로 전달한다. 고아성은 미정을 통해 깨질 듯 위태로운 감정선과 불안, 생존 감각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결국 ‘파반느’는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 즉 결핍을 품은 존재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응시한다. 요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어도 조용히 감정을 흔든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