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개봉을 앞둔 영화 감독의 희망찬 출사표,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영화인들이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즐거움도 잠시,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는다. 초대하지 않은 불편한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음식은 게걸스럽게 먹기 바쁘고,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기 일쑤인 데다 회색빛의 뜬구름 잡는 훈수와 이미 수차례 들었던 지겨운 추억을 늘어놓는다. 좋았던 흐름엔 먹구름이 낀다. 20년째 데뷔에 실패한 채 영화판을 기웃거리는 황동만(구교환 분)이 그 불청객이다.

18일 첫 방송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속 황동만은 어디 하나 매력적인 구석이 없다.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데, 대부분 듣기 싫은 이야기다. 쭉 듣다 보면 마치 깔때기처럼 자기 자랑으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인정해 줄 만한 요소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아무런 성취도 없는 감독의 자랑을 들어주는 게 꼭 쉬운 건 아니다. 남의 불행엔 화색이 돌아 미소를 짓고, 남의 성공엔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못난 40대 남자를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까.

그런 황동만에게 구원이 찾아온다. 최필름에서 시나리오를 날카롭게 내려친다고 해 ‘도끼’란 별명을 가진 변은아(고윤정 분) PD다. 인근 동네에서 살고 있는 변은아는 황동만의 불안을 누구보다 깊게 공감한다. 그래서 그가 왜 그렇게 쉼 없이 떠드는지, 왜 말을 하지 않으면 잡아먹힐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는지 알고 있다. 그렇게 황동만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유일한 존재다. 황동만은 조금씩 힘을 낸다.

이제 겨우 1회를 공개한 ‘모자무싸’에는 대작의 향기가 난다. 구교환의 원맨쇼가 그 기대를 만들었다. 황동만이 가진 불안을 다채로운 연기와 표정, 온갖 리액션, 깊숙한 눈빛으로 표현했다. 남을 무시할 때나 남에게 무시받을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오는 표정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새롭다. 흔히 말하는 ‘정답이 아닌 정답’을 매 순간 찾아낸 모양새다.

특히 약 30억원이 지원되는 영화제작 공모에 실패한 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울하지 않으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은 높은 사회의 벽에 부딪힌 청춘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혹시나 복이 달아날까 공모전 최종 심사에 붙은 것조차 말하지 않으려 했던 간절한 소망이 무너졌을 때의 참담함이 황동만의 얼굴에 있다.

구교환은 남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거듭하는 답답한 지질남 황동만 안에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았다. 못된 말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그 말이 꼭 진심이 아니란 것이 은연중에 담겨 있고, 자신도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동정심을 자극하도록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황동만이 보란 듯이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가 다양성을 터부시하는 바쁜 현대인에게 통쾌한 일갈을 날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듯 비호감 인물조차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만드는 마법이 구교환을 ‘캐스팅 0순위’로 만든 이유다. 아무리 힘든 콘텐츠계가 혹한기를 걷고 있어도 구교환만큼은 차기작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인물을 맡아도 그 인물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대본이 다 채우지 못한 여백을 메우는 배우라는 평가가 따른다. 그 호평의 이유를 ‘모자무싸’ 1회에 완벽히 증명했다.

날뛰는 황동만 옆에서 차분한 공기를 만드는 건 변은아다. 생각은 많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최소한으로 하는 변은아는 황동만의 재능을 알아보고 도우려 한다. 변은아는 재능과 실력이 풍부할 뿐 아니라 따뜻한 인류애도 배어 있다. 지질한 황동만과 차분한 변은아로 만난 구교환과 고윤정의 호흡은 첫 만남에도 매우 자연스럽다.

변은아 앞에서는 진중해지는 황동만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발레리노 빌리처럼 꿈만 같은 도약을 이뤄낼지, 벌써부터 뭉클함이 밀려온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