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후 원·하청 교섭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노동자 “성과에 대한 정당한 몫”, 기업 “미래 생존을 위한 투자”

노사 갈등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

지금 필요한 것,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정교한 제도 설계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최근 산업 현장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반도체·자동차·조선·IT 업계를 중심으로 성과급 갈등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시행 이후 원·하청 교섭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권 강화를 주장하고, 경영계는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핵심 과제는 어느 한쪽의 승패가 아니다. 노동권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공존시키느냐의 문제다.

최근의 성과급 갈등은 단순한 임금 분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노사 협상의 중심이 기본급과 고용 안정이었다면, 이제 노동자들은 기업 성과의 분배 구조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성과 신뢰의 문제다. 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성과급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거나 보상이 특정 경영진 중심으로 집중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노동 현장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성과급 갈등은 기업 내부 신뢰 시스템의 균열을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기업들의 현실 역시 녹록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보호무역주의 강화, 고금리 장기화 등 기업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조선 산업처럼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미래 생존을 위한 투자 여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기 실적을 지속 가능한 고정비 증가로 연결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노동자는 “성과에 대한 정당한 몫”을 요구하고, 기업은 “미래 생존을 위한 투자”를 강조한다. 양측 모두 현실적인 논리를 갖고 있다. 문제는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산업 질서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이 법안은 원청 기업의 실질적 책임을 강화하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원청이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기존 구조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는 원청의 결정이 노동 조건과 임금 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법의 취지와 실제 작동 방식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노동위원회가 일부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원·하청 교섭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경영계는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경우 기업의 투자·인사·사업 구조조정 같은 경영 판단 영역까지 상시적 갈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제한 문제 역시 산업 현장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핵심은 노동권 보장 자체가 아니다. 그 권리를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할 것인가에 있다. 노동권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가치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만약 제도 변화가 기업 투자 위축과 생산기지 해외 이전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 그 부담은 노동시장 전체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와 글로벌 산업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결국 고용 안정의 기반이라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경영계 역시 노동자의 공정 보상 요구를 단순한 비용 증가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정교한 제도 설계다.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권 보호라는 취지를 유지하되, 사용자 책임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 손해배상 제한 기준 등을 보다 명확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당한 노동권 행사와 불법 행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산업 현장이 예측 가능한 기준 속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와 국회가 각자의 이해만 앞세운다면 이 갈등은 장기 소모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정치가 아니다. 노동권과 산업 경쟁력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균형의 정치’다.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의 권리와 기업의 생존, 공정한 분배와 미래 투자라는 서로 다른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한국 경제 역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sangbae030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