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부터 약 3년이 지났다. 쉼 없이 달렸다. 넷플릭스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아’)와 디즈니+ ‘조명가게’, 넷플릭스 ‘멜로무비’, 티빙 ‘미지의 서울’, 디즈니+ ‘골드랜드’까지 무려 6편의 작품에 합류했다. 엄청난 활동량 속에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뽀블리 지우기’다.

자그마한 체구와 큰 눈망울에서 나오는 밝은 웃음은 박보영의 시그니처다. 하지만 근 3년의 궤적에선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자취를 감췄다. 극단적인 재난 속에서 튀어나온 광기(‘콘크리트 유토피아’)부터 가까웠던 환자의 죽음 이후 찾아온 극한의 우울(‘정신아’), 미스터리 앞의 혼란(‘조명가게’), 냉정하고 딱딱한 영화감독(‘멜로무비’), 극단적 감정을 오가는 쌍둥이(‘미지의 서울’), 그리고 1톤 금괴를 사수하기 위해 폭주하는 탐욕(‘골드랜드’)까지. 자신의 주무기를 과감히 내려놓고 서늘한 변신을 거듭했다. 결과는 모두 성공적이다.

박보영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장르물을 향한 갈증이 있었고, 마침 좋은 기회가 계속 찾아왔다”고 털어놨다. 특히 최신작 ‘골드랜드’는 그녀 스스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어둠과 우울의 한계치”라고 말했다.

박보영이 연기한 ‘골드랜드’ 희주는 겉보기엔 공항 세관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지만, 내면은 곪아 터지기 직전이다. 다방 일을 하는 엄마를 원망 속에 지켜봐야 했고, 새아빠는 틈만 나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 살기 위해 도망쳐 겨우 숨만 쉬며 버텨온,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던 인물이다. 그런 그녀 앞에 한 줄기 빛 같은 남자를 만나 삶은 연명하던 중 1톤의 금괴가 나타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이 시작됐다.

“대본을 읽는데 희주가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아마 저라면 금괴를 쉽게 돌려줬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감독님께서 ‘당신처럼 쉽게 돌려줄 것 같은 인물이 돌려주지 않고 욕망을 드러낼 때, 관객은 더 큰 배신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고 설득해주셨어요.”

희주는 지독한 피폐함이 깔린 인물이다. 10부 내내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애초에 위태로웠던 정신은 금괴라는 거대한 욕망과 마주하며 서서히 붕괴되고, 끝내 광기로 치닫는다. 박보영은 총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평범한 여성이 상황에 휩쓸려 깊은 탐욕의 늪에 빠져드는 과정을 얼굴 근육 하나하나로 치밀하게 만들어냈다.

“도경(이현욱 분)이 나타날 때까지만 지키려던 마음이 결국 욕심으로 번지잖아요.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변해가는 감정과, 깊은 욕망에 빠져드는 단계를 표현하는 데 가장 중점을 뒀어요. 한동안 장르물만 해서 스스로 텐션이 너무 내려가긴 했지만, ‘골드랜드’는 제 체구나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밤이었어요. 큰 도전이었고, 무사히 마쳐서 기뻐요.”

로맨스는 물론 장르물마저 완벽히 섭렵하며 가장 깊고 서늘한 어둠을 통과한 박보영은 지금 가장 찬란한 화양연화를 맞이했다. 데뷔 2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에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까지 품에 안으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과를 증명했다.

2006년 EBS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이래 쉼 없이 내달리며 완성형 배우로 우뚝 선 것이다. 국민 여동생의 껍질을 완벽히 깨부순 20년 차 배우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운이 참 좋았어요. 데뷔할 때쯤 ‘무쌍’을 예뻐해 주시는 분위기였고, 작품 운도 계속 따랐죠. 뒤처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노력했지만, 노력만으로 좋은 기회를 얻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큰 상을 받으면서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 배우 인생이 지금 중간쯤 왔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손가락질받지 않도록 더 절박하게 나아가겠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