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숫자만 빠르게 띄우던 개표방송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방송은 결과를 전달하는 뉴스이면서, 각 방송사의 기술력과 기획력, 브랜드 감각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무대가 됐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3일, 지상파 3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선거의 밤을 채웠다.

이번 개표방송의 공통 키워드는 AI였다. 방송사들은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대형 LED,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앞세웠다. 후보별 득표율과 개표율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시청자가 판세를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 자체를 재구성했다.

결과에서는 MBC가 웃었다. 4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MBC ‘선택 2026-MBC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방송’ 4부는 전국 기준 8.3%(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같은 날 방송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MBC의 승부수는 화면의 밀도였다. ‘선택 2026’은 대형 LED와 입체형 장비를 활용해 선거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풀었다. 가로 33m가 넘는 메인 LED와 선거방송 최초로 도입한 정육면체형 LED ‘큐브M’은 개표 상황을 단순한 표와 막대그래프에서 벗어나 하나의 장면처럼 보여줬다. 후보 간 격차, 접전지의 흐름, 지역별 판세가 넓은 화면 위에서 움직였고, 시청자는 복잡한 숫자를 비교적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SBS는 가장 빠르고 가벼운 리듬을 택했다. 선거방송마다 강점을 보여온 패러디와 그래픽 감각을 이번에도 전면에 세웠다. 실시간 개표 정보 그래픽인 ‘바이폰’은 후보 간 경쟁 구도를 재치 있게 표현했고, 자사 인기 드라마 ‘모범택시’를 패러디한 ‘지선택시’를 비롯해 ‘진격의 후보들’ ‘초인을 찾아서’ 같은 구성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았다.

SBS 개표방송의 특징은 선거 정보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접전 지역의 판세를 설명할 때도 게임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했다.

KBS는 다른 길을 걸었다. 화려한 패러디나 강한 예능감보다 공영방송의 안정감을 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특설무대 ‘K존’을 마련하고, 스튜디오 ‘K룸’, 대형 스튜디오 월 ‘K월’을 오가며 개표 상황을 전했다. 장소 선택부터 메시지가 분명했다. 선거를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재가 만나는 장면으로 보여주려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공간은 KBS 개표방송의 가장 큰 차별점이었다. 박물관 야외의 거울못을 활용한 그래픽 연출, 지역별 유물을 활용한 결과 전달 등은 다른 방송사와 결이 달랐다. 각 지역의 표심을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과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세 방송사의 방향은 분명히 달랐다. MBC는 기술과 영상미를 앞세워 선거방송의 규모감을 키웠다. SBS는 패러디와 AI 분석을 결합해 빠른 재미와 정보성을 동시에 노렸다. KBS는 역사적 공간과 분석 중심의 구성으로 신뢰와 품격을 강조했다. 같은 선거를 다뤘지만, 화면의 온도와 말투는 전혀 달랐다.

개표방송은 더 이상 단순한 개표 중계가 아니다. 정치와 기술, 뉴스와 예능, 데이터와 스토리텔링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장르가 됐다.

이번 6.3 지방선거 개표방송은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밤이었다. 숫자는 투표 결과를 말했고, 방송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숫자에 얼굴을 입혔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