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두고 ‘셀프 레드카드’를 품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결심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담금질하던 축구대표팀에도 예상치 못한 뉴스였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월드컵 본선이 임박해 협회장이 자진 사퇴를 선언한 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최측근과 최종적으로 견해를 나눈 뒤 발표 전 주말께 사퇴 결심을 굳혔다. 협회 주요 실무진도 발표 당일에야 접할 정도로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다만 집행부의 핵심 관계자는 정 회장과 견해를 나눈 터라 인지하고 있었다.

누구나 공과가 따른다. 2013년 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천안 코리아풋볼파크 건립을 통한 선진 인프라 구축과 디비전 시스템 도입,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 진출 등 공을 남겼다. 다만 지난 3선 기간 승부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 파동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논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등과 대립으로 국정 감사장까지 끌려갔다.

끝내 문체부가 2024년 협회에 대한 특정감사를 통해 정 회장 등 임원진에 자격정지 이상 중징계를 요구했다. 협회가 행정 소송으로 맞섰는데, 최근 서울행정법원 1심에서 패소했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 4선 임기를 시작한 정 회장으로서는 코너에 몰렸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달 22일 국가 정상화 프로젝트 1차 과제에 ‘축구협회 혁신’을 명시, 대기업 총수이기도 한 정 회장이 커다란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퇴로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평소 장고를 거듭하는 정 회장 성향상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리라고 본 이들은 거의 없었다. 최측근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정 회장이 사퇴를 결심하는 데 마지막 결정적 배경이 된 건 ‘월드컵 특수’ 실종. 정 회장은 지난달 16일 홍명보호의 월드컵 최종 26인이 발표된 뒤 열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주요 스폰서의 냉랭한 반응이 겹치면서 크게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자진 사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시기는 아쉽지만 늦게나마 결자해지 정신으로 진정성 있게 상황을 타개하려는 마음을 높게 볼만하다. 사실 1심 패소 이후 무리한 항소보다 진심 어린 사과와 더불어 즉각 실행 가능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게 낫다는 견해가 나온 적이 있다. 정 회장은 4선 기간 약속한 미래 행정가 육성 등에 소홀했다. 코리아풋볼파크 건립 치적을 내세우는 데 주력했다. 현재 축구계 민심을 볼 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혁신과 쇄신 의지를 담은 인재 중용, 시스템 가동이 우선이었다.

역으로 보면 여전히 축구인 중엔 비판은 할 줄 알아도 희생하며 행정 주력으로 나설 이들은 적다. 정 회장이 그토록 비난 받고도 4선 도전 때 85.6%의 지지율로 당선한 배경과 맞물린다.

그사이 축구계는 정치판처럼 논리가 붕괴했다. 근거 없는 말이 진실이 되고 그 뒤에 숨은 이해관계, 동기, 세력엔 관심이 없는 세상이 됐다. 믿고 싶고, 듣고 싶은 말만 선택하는 시대다.

이런 시기에 고마운 건 태극전사다. 이번 월드컵은 두 동강, 세 동강 난 한국 축구를 다시 세울 동력의 장이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모두 근거 없는 비난, 정 회장 사퇴 충격파에도 뚝심 있게 월드컵을 준비해 왔다. 마침내 6일 결전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입성했다. “월드컵이 망해야 한국 축구의 새 판을 짜고 다시 세울 수 있다”며 악담을 퍼붓는 일부 무리의 견해는 지일부지이(知一不知二)다. 국내 축구 산업에서 최상위 대표팀이 추락했을 때 발생할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불성설이다.

최소한 월드컵 기간만큼은 정치적인 비난이나 찬반 갈등은 없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개혁과 쇄신은 필요하지만 월드컵을 마치고 다뤄도 늦지 않다. 국민과 축구인 모두 순수하게 종목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한 그 시절로 돌아가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미래 비전에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과달라하라 |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