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 ‘5·18 조롱’ 정쟁으로 번져

교육청 “엄정 대응”·공정위 “출전 정지”

사태 본질은 처벌아닌 교육 패러다임 변화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인들 참견 말아야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배재학당의 ‘5·18 폄훼’가 정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메시지를 내놓는 사이, 정작 교육청과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벌어진 배재고 야구부의 이른바 ‘스타벅스 가야지’ 사태가 정치 논쟁으로 번졌다. 신성한 그라운드에서 일어난 참사를 정쟁의 소재로 끌고 가는 국회의원들의 작태는 낯부끄러운 수준을 넘어섰다. 올바른 교육과 스포츠 가치를 세울 정책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선처’와 ‘엄벌’ 사이 단어 싸움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참사의 본질은 처벌 수위가 아니다. 고교야구를 넘어 청소년 사회 전반에 이미 스낵 콘텐츠로 자리잡은 조롱과 혐오를, 배려와 존중으로 어떻게 바꿔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배재고 야구부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든 엄벌을 내리든, 유사한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를 자처한다면 당리당략이 아니라 건강한 청소년 육성에 목소리를 모아야 마땅하다.

서울시교육청은 1일 “이번 사안을 매우 엄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하거나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표현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학생이 타인의 존엄과 인권을 존중하고, 역사적 상처에 공감하며,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학교 운동부를 대상으로 경기장 내 혐오·차별 표현 근절, 상대팀과 지역사회 존중, 역사 인식 교육 강화 등에 힘쓰겠다”는 원론적 방안만 나열했을 뿐이다.

교육청이 입장문을 발표한 시각,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는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열렸다.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정위를 소집한 것이다. 협회 측은 “짧은 시간에 너무 크게 이슈가 된 탓에 공정위원들도 심적 부담이 큰 상태”라고 전했다.

그렇게 나온 처분은 ‘배재고의 전국대회 출전 6개월 정지’가 전부다. “지도자와 선수 징계는 심사숙고가 필요해 대상자를 특정해 다시 공정위를 열겠다”고 덧붙였다. 책임자를 가려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협회는 “경기 시작 전 감독에게 부적절한 응원 행위 금지 안내를 의무화하고, 유사 사례 발생 시 엄정하게 대응하도록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의해 학생 선수의 올바른 역사 인식과 사회적 감수성 함양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아직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청과 종목단체 모두 실질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다. 교육 커리큘럼을 누가 짤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지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다. 이 과정에 정치권이 개입할 자리는 없다. 입법 등 제도적 지원 외에는, 어떤 형태로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병들게 한 것도, 조롱과 혐오의 문화를 키운 것도 결국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주창한 정치인들은 학생선수에게 일반 학생과 동일한 학습을 강요했다. 학업 성취도가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선수 자격을 박탈하는 강경 조치까지 뒤따랐다.

몸을 쓰는 운동은 머리를 쓰는 공부보다 몇 배의 노력을 요구한다. 몸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국영수과사’가 아니라 ‘남의 노력을 인정하는 법’이다.

특히 학생선수에게는 올바른 몸 관리, 자신이 하는 종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이론적 지식이 중요하다. 몸을 쓰는 방식과 그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직업 선수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싹튼다. 이런 문화가 학교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야, ‘운동선수는 공부를 하지 않아 무식하다’는 낡은 폄훼도 사라진다.

학교 체육과 청소년 스포츠는 정쟁의 소재가 아니다. 몸을 쓰는 행위를 통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체득하는 필수 교육과정이다. 정치권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