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최진철
[용인=스포츠서울 최재원선임기자]최진철 17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진행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 도중 촬영에 응하고 있다. shine@sportsseoul.com

[용인=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단풍이 물든 용인시 보정동 카페골목에 그의 붉은색 스웨터가 잘 어울렸다. “모델도 아니고 촬영이 어색한데…”라면서도 포근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는 영락 없는 가을 남자다. 최·진·철(44).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중심 멤버 중 하나로, 그리고 4년 뒤 독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 가슴을 찡하게 한 붕대투혼으로 기억되는 그는 올 가을 17세 이하(U-17) 대표팀 제자들을 이끌고 한국과 정반대에 위치한 칠레에서 한국 축구 새 역사를 썼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최초 브라질전 승리를 비롯해 1~2차전 첫 2연승, 그리고 조별리그 첫 무실점 통과까지. 16강 벨기에전에서의 아쉬운 패배는 어쩌면 ‘지도자 최진철’의 2막을 위한 여운일지도 모르겠다. 낙엽이 조금씩 지는 늦가을에 그를 만났다. 최 감독은 “(시차 문제로)새벽에 잠을 깼다”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털어놓으며 ‘칠레에서의 소풍’을 추억했다.

◇“U-17 대표팀은 첫 정이 담긴 팀”

최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브라질전보다 교체 멤버 오세훈이 버저비터 골을 터트린 기니전 결승골 장면을 꼽았다. “용병술이 기가 막혔다”는 말에 “그건 아니고…”라며 손을 내저은 최 감독은 “세훈이는 칠레에서 뛰고 싶은 열망이 많은 선수였다. 감독 입장에선 그런 선수들을 1분이라도 더 뛰게 하고 싶어한다. 세훈이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며 제자를 칭찬한 뒤 “모든 순간이 기억나지만 그 중에서도 하날 꼽아달라면 기니전 결승골 장면이다”고 말했다.

2연승으로 16강행 조기 확정을 일궈내자 국내에선 ‘최진철 리더십’ 관련 기사가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최 감독은 ‘리더십’이란 거창한 단어를 사양했다. 오히려 어린 선수들과의 소소한 ‘정’이 역사를 만든 밑바탕이었다. “2011년 말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로 왔다. 13세를 담당했고, 지금 17세 대표팀인 14세 대표팀 코치를 했다”는 그는 “코치하면서 지금 U-17 대표팀 선수들에게 많은 정을 쏟았다. ‘첫 정’이 무섭다고 하질 않나. 그거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정은 정이고, 운동은 운동이다. 스승 거스 히딩크 감독의 철학은 그의 철학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님은 훈련이 마음에 안 들면 화도 많이 내셨다”며 “지금 내 철학도 그렇다. 훈련장에서 100% 아니 120%를 보여줘야 긴장감 넘치는 실전에서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S포토]최진철
[용인=스포츠서울 최재원선임기자]최진철 17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하고 있다. shine@sportsseoul.com

◇이승우 만큼 다른 제자들도 생각했다

최 감독은 지난 달 31일 귀국 직후 “16강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승패를 떠나 후회 없는 승부를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벨기에전은 아쉽다. “(3차전)잉글랜드전 마친 뒤 선수들 휴식도 주며 상승세를 이어가려고 했다”는 그는 “그러나 조별리그에서 좋은 성적 내고 분위기가 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벨기에와의 16강전을 앞둔 분위기가 한·일 월드컵 8강에서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간 뒤와 비슷했다. 뭔가를 이룬 다음 나오는 느슨함 같은 것이었다. 나 혼자 다 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라며 지도자 인생에 좋은 교훈이 됐음을 전했다.

1~2차전 헌신적인 움직임, 16강전 페널티킥 실축으로 ‘온탕’과 ‘냉탕’을 오간 제자 이승우도 언급했다. 그는 “난 승우에 대해선 100번, 1000번 양보했다”고 털어놓은 뒤 말을 이었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길들이기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승우와 대화하며 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고 그간의 노력을 밝혔다. 그는 “승우는 공격적 재능을 분명히 갖췄다”며 “다만 세계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격돌했을 때 해결사가 되기 위해선 승우도 더 노력했으면 한다”며 지금보다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주문했다. U-17 대표팀은 사실 이승우라는 천재가 나타나면서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주목받은 것도 사실이다. 최 감독은 그래서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형평성 측면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밑에 있는 선수들도 고루고루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며 “그래도 3차전 잉글랜드전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 주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브라질 이긴 뒤 울었던 아내 “가족들이 고맙다”

최 감독이 칠레 월드컵 준비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그의 가족들은 꽤나 가슴 졸였다. 지난 9월 ‘모의고사’로 치른 수원컵에서 2무1패를 기록한 뒤 최 감독과 선수들에게 대한 비난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브라질과의 1차전을 이긴 뒤 아내가 펑펑 울었다. 댓글 보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지만 어떻게 보지 않았겠는가”라며 가족들이 겪은 마음고생을 설명한 뒤 “칠레에서 돌아오니 고3 아들과 중3 딸 모두 가방 들어준다고 집 앞에 나와있더라. 특히 아들이 수원컵 때보다 얼굴이 밝아졌다”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소임을 다한 최 감독은 본분인 협회 전임지도자로 돌아간다. 6년 전 U-17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룬 이광종 당시 감독은 이후 U-20(2011·2013년), 아시안게임(2014년) 지휘봉을 잡고 한국 축구 차세대 지도자로 커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각급대표팀 사령탑이 모두 있어 최 감독이 뜻을 펼칠 공간이 좁은 것도 현실이다. 최 감독도 꿈은 있다. 그는 “나도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다. 어느 시점에선 도전해보고도 싶다”며 ‘지도자 최진철의 2막’을 기약했다.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