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
국내 유일의 돔 구장인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 ‘버뮤다 삼각지대’가 존재해 각 팀이 비상에 걸렸다.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서울 고척 스카이돔(고척돔)에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존재한다. 버뮤다 삼각지대는 대서양과 멕시코만이 만나는, 버뮤다 제도를 정점으로 플로리다주와 푸에르트리코를 선으로 이어 그린 삼각형 형태의 해협을 뜻한다. 이 삼각지대를 지나는 배나 비행기 사고가 잦았는데, 그 파편조차 찾지 못해 ‘마의 바다’로 불리기도 한다. 고척돔에도 내부 상공을 비행하는 야구공이 특정지역을 지나는 순간 돌연 사라진다. 팝 플라이 때 외야수들이 잔뜩 긴장하는 이유다.

◇멀쩡한 야구공이 왜 사라지나?

플라이 타구가 사라지는 이유는 조도 차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돔 구장이지만, 야구 전문가들이 설계에 참여하지 않은 탓에 발생한 문제점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천장이다.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철골 트러스트로 기초 구조물을 세우고 그 위를 테프론막으로 덮은 형태다. 흰색을 띄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 색깔과 겹친다. 여기에 회색 철골 트러스트에 캣워크(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임의로 만들어 놓은 통로)까지 설치돼 시선을 분산시킨다. 외야 수비로는 국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삼성 박해민은 “가만히 서서 타구를 처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타구가 뜨는 순간 낙구점을 예측하고 스타트를 끊는데, 낙구점 근처에서 올려다보면 바로 타구를 찾을 수가 없다. 타구를 보면서 달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기설기 엮인 구조물에 흰색과 회색이 공존하는 복잡한 형태라, 천장과 공을 순간적으로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 원인은 관중석과 철골구조물, 조명탑, 천장으로 이어지는 벽쪽 라인에 음영이 반복된다. 관중석 의자가 연한 하늘색인데, 3층 관중석 제일 꼭대기 부분과 짙은 회색의 건물 내벽이 만난다. 이 곳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조명탑이 설치 돼 있고, 다시 짙은 회색의 건물 내벽을 지나 흰색 천장으로 이어지는 아치형 구조다. 포물선을 그리는 타구가 관중석과 조명탑 사이를 통과할 때, 조명탑을 지나 흰색 천장에 도달할 때 또다시 공이 사라지는 현상이 나온다. 타구가 포물‘선’이 아니라 포물‘점’으로 보이는 셈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내야 팝 플라이가 뜨면 타구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선수들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S포토]SK 이명기, 잡는 줄 알았는데...
SK 좌익수 이명기가 1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시범경기 넥센-SK전 2회말 1사 넥센 김하성의 타구를 놓치고 있다. 고척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아야 한다

타구가 사라지면, 수비뿐만 아니라 주자들도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타구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자들도 타구 판단을 하기 어렵다. 주자 위치에서는 평범한 플라이로 본 타구를 야수들이 놓치는 경우도 있고, 주자가 타구를 놓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돔구장에 익숙하지 않은 KBO리그 선수들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류 감독은 “그래도 몇 경기 치르다보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비 입장에서 타구를 놓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염 감독과 류 감독, SK 박진만, 넥센 홍원기 수비코치 등은 “타구에서 시선을 떼면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해민의 말처럼, 정상급 외야수들은 타구가 배트에 맞는 순간 낙구점을 예측한다. 고개를 하늘로 들고 달리면 방향이나 균형감을 잃을 수도 있고, 전력질주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낙구 지점까지 달려간 뒤 고개를 돌려 타구 위치를 체크한다. 하지만 고척돔에서는 이런 플레이는 금물이다. 지난 19일 넥센과 시범경기에서 이른바 ‘만세’를 불렀던 박해민은 20일 경기에서는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달려갔다. 수비 능력이 뛰어난 야수들이라면 큰 영향 없겠지만, 평범한 수비를 가진 선수들은 시즌 내내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타구를 보고 전력질주 하는 만큼, 야수간 콜 플레이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외야에서 실수는 대량실점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많아, 고척돔 ‘버뮤다 삼각지대’를 경험한 몇몇 팀 관계자들은 “시범경기가 끝난 뒤에 따로 대관을 해 훈련해야 할 것”이라고 뼈있는 농담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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