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SS포토]
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2016.04.28.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고진현 체육2부장]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는 ‘파리 목숨’이라는 자조섞인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마당에 프로의 젖줄인 아마추어 야구도 덩달아 그 위상과 환경이 나아져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프로가 살을 찌울수록 오히려 아마추어가 더욱 쪼그라드는 스포츠의 양극화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종목이 바로 야구다.

성적 지상주의의 퐁토 속에 지도자의 직업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경성대 윤영환(54) 감독은 별종이다. 지난 1997년 경성대 지휘봉을 잡은 이래 무려 20년째 사령탑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은 ‘파리 목숨’이라는 아마추어 감독 자리를 20년 동안 지켜내서라기 보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연상시키는 놀라운 지도력에서 더욱 빛난다.

윤 감독은 경성대 지휘봉을 쥐면서 대학야구의 판도를 바꿔놓은 지도자다.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대학야구 전통의 ‘3강 구도’를 허물어뜨린 것은 물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선수들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키워내는 놀라운 재주까지 뽐냈다. 임재철, 정원욱, 이용훈(이상 전 롯데), 장원삼, 이지영, 이정식(이상 삼성), 고창성(NC), 김회성(한화) 등이 그가 경성대에서 키워 프로에 진출시킨 제자들이다. 윤 감독은 지금까지 30여명의 경성대 선수들을 프로에 보냈고16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키워냈다. 프로는 물론 수도권 대학에서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고만고만한 선수들의 잠재력 하나만 보고 스카우트해서 일궈낸 성적표라면 이건 기적에 가깝다.

윤 감독이 이끈 경성대는 지난 달 막을 내린 올 시즌 첫 대회인 2016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대회에서도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윤 감독은 경성대를 맡은 이래 결승에만 31번 진출했다. 우승컵은 15번이나 들어올렸다.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미다스의 손’, ‘우승 제조기’라는 별명은 결코 과분한 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구릿빛 얼굴과 땀에 절은 유니폼을 보고 있노라면 한계를 넘어서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승부사의 집념을 읽을 수 있어 짐짓 고개가 숙여질 정도다.

윤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의 원천이 궁금했다. 기자의 호기심은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상경하는 윤 감독을 회사로 불러들이는 무례함으로 이어졌다. “아마추어 대학 감독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인터뷰는 하십니까?” 씩씩한 경상도 사나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한 번 입을 열기가 무섭게 내공깊은 야구 철학을 쏟아냈다. 왜 그가 대단한 지도자인 줄 단박에 깨닫게 됐다.

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SS포토]
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2016.04.28.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윤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계에선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린다. 지방대학교에서 감독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대한민국 전체 사회가 중앙무대를 지향하는 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지방대학에서 야구 하나로 전국을 제패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 팀은 항상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팀이다. 누구나 노력은 한다. 다만 어떻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팀은 다른 팀과 달리 철저한 준비가 강점이다. 팀 구성상 개인의 뛰어난 기량에 의존하기 보다는 팀워크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하고자 하는 의욕을 넘치게 해야 한다. 경기를 할 때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스타일로 경기력을 다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철저한 준비와 함께 학교측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힘이다. 전국 대학교 야구팀 가운데 전 선수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곳은 아마도 우리 학교가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 대회 출전비, 도구비 등도 학교 측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다. 야구만큼은 전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만들고자하는 학교 측의 의지는 지도자와 선수에겐 더할 나위없는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 이제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프로 지도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윤 감독은 프로 경험이 없는 지도자다. 현역 시절 꽤 잘한 선수였는데 왜 프로에 진출하지 않았는가?

대학시절에는 청보, 상무 제대 당시에는 빙그레에서 각각 지명을 받았다. 두 번이나 프로에서 지명을 받았지만 아마추어에 남게 된 것은 대학 때 다친 무릎이 내 자신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보다 안정된 직장을 선택하자는 마음으로 아마추어에 남았다. 사람들이 모두 프로 출신을 선호하며 프로 출신들이 지도자생활에서 프리미엄을 누릴 때 후회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콤플렉스가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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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루 플레이와 수비 포메이션 등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선진적인 야구를 꽤 일찍 구사한 지도자다. 야구에 대한 이론적 공부와 깊이있는 접근은 본인의 취향인가 아니면 그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선수시절 내야수와 1번타자 경험을 하면서 공격적인 주루플레이와 수비의 중요성을 나름대로 느꼈다. 중·고교, 대학, 상무, 한국화장품 등 야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주장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것도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이다. 주장으로서 선수들에게 주루 플레이, 수비 포메이션 등을 자주 설명하면서 야구이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 야구입문 동기는 무엇인가? 야구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또래 친구들보다 모든 운동을 아주 잘했다. 마침 중학교 야구부가 창단돼 야구 감독님을 찾아가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히 잘뛰고 공을 멀리 던져 야구에 입문하게 됐다. 마산상고시절인 1980년 청룡기 결승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시 1번타자와 2루수로 활약했지만 박노준, 김건우가 맹활약한 선린상고에 0-5로 완패했다. 연도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무 시절 백호기에서 1이닝 2홈런이라는 국내 최초의 진기록을 달성한 것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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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감독으로서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로 활약한 적도 많다.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로 활약하면서 한국 야구의 지향점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텐데.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국제대회는 거의 참가해본 것 같다. 한국 야구의 경기력이 월드클래스라 세계적인 야구의 흐름이나 전술 등에서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다. 다만 야구를 둘러싼 환경과 지원이라는 측면에선 아쉬운 점이 다소 있다. 프로선수와 아마선수 출전 대회에 따라 협회의 지원이 현저히 차이나는 문제점은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마음놓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동일한 지원 시스템이 절실하다. 세계야구는 많이 변해가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칫 지원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후발주자들에게 추격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한국야구의 장래를 위해 대한야구협회는 물론 프로를 관장하고 있는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서로 협력해 선수 구성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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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구기종목은 결국 스카우트가 반이다. 지방대학교라 선수 스카우트에서 힘든 점이 많을텐데.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는 싶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수도권 대학과의 스카우트 경쟁은 백전백패다. 따라서 우리 팀은 현재의 실력보다는 내일의 가능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선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이후 학교를 방문해 훈련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 감독의 의견을 종합해 스카우트를 결정한다. 대기만성형 선수의 스카우트는 가장 힘들다. 숨어 있는 잠재력을 간파하는 통찰력,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 윤 감독은 선수 보는 눈이 뛰어나다. 선수를 뽑을 때 어떤 면을 중요시하는가?

예의와 인성이다. 어차피 A급 선수는 못데려오지만 가르쳐서 선수를 만들기 위해선 지도자의 코칭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신의 실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면 절대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예의와 인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체격조건이다. 체격조건이 좋으면 기량향상에 속도가 더 붙을 수 있다. 기술은 체력적 뒷받침속에 향상된다는 게 지론이다.

-경성대 야구는 확률이 높은 플레이가 특징이다. 경기력에 기복이 심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선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평소 훈련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가?

기초체력과 야구에 필요한 전문체력을 나눠 철저히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다. 체력은 기복없는 플레이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운동역학이 까다로운 야구에서는 기본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 잘못된 자세로 훈련하면 야구에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본기가 없다면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만다. 야구는 자기 팀이 잘해서 이기는 것보다 상대 팀의 실수로 인해서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결정적인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기본기에 충실한 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경성대 야구가 다른 팀에 견줘 안정감 넘친 플레이를 펼치는 건 체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때문인 것 같다.

- 고교시절 두드러지지 않는 선수들을 대학에 입학시켜 키워나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 동안 지도한 선수 중 대학에서 기량이 급성장한 선수들도 많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선수는 누구인가?

우리 팀 선수들 가운데 고교 때 두드러진 활약을 했던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대학 진학 후 차근차근 기량을 끌어올려 좋은 선수로 성장했다. 삼성의 왼손투수 장원삼은 마산상고 재학시절 최고 구속이 시속 120㎞대에 불과했지만 폼이 너무 예뻐 스카우트한 케이스다. 대학 입학 후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키우니 스피드도 올라와 대학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임재철(전 롯데)의 경우는 고교 시절 투수였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과감하게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성공한 케이스다.

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SS포토]
데스크가 만난 사람- 경성대 윤영환 감독.2016.04.28.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대학무대에서 명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혹시 프로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야구 지도자라면 누구나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고픈 욕심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야구라고 해서 프로와 아마가 다르지 않다. 똑같은 야구인 만큼 나는 언제 어디서나 야구를 공부하고 연구할 뿐이다. 다만 허황된 내일을 꿈꾸고 기대하기 보다는 오늘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다는 생각이다.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 자신의 지도자생활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나를 지도해준 야구 은사님들이 모두 한국 야구에서 일가를 이루신 명장이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유영수 감독님은 기본기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셨고, 대학시절 주성노 감독님은 경기력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훈련방법을 전수해주셨다. 대학시절 또 다른 은사이신 장순조 감독님으로부터는 열정을 배웠다. 상무시절에는 김정택 감독님으로부터 야구를 분석하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화장품 김병일 감독님은 팀을 꾸려나가는 리더십과 지도자의 용기를 가르쳐 주셨다. 요즈음에는 프로 감독으로부터도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사령탑으로 모셨던 kt 조범현 감독은 최근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시고 있다.

- 윤 감독의 야구는 무척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선이 굵다는 느낌을 받는다. 본인이 추구하는 야구의 색깔은 무엇인가?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는 얘기는 스포츠계에선 생명력있는 격언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틀에 얽매이기 보다는 ‘이기는 야구’에 집중한다. 상대에 따라 카멜레온 같은 전술을 구사하고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야구는 공격과 수비에 따라,그리고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에 따라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 대학야구가 너무나도 침체돼 있다.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고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한야구협회, 한국야구위원회, 대학야구연맹에서 머리를 맞대고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화려한 꽃을 피우기 전에 뿌리와 줄기를 튼튼하게 만들수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프로야구가 화려한 꽃이라면 아마추어 야구는 줄기와 뿌리다. 야구 관계기구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대학 지도자들의 의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야구에 선수들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는데 나는 감히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고 싶다. 1년에 700명의 고졸선수가 배출된다. 프로에 진출하는 약 50~60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대학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640~650명이나 되는 선수를 왜 키워내지 못하는가? 지도자와 선수가 노력한다면 대선수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 아마추어 지도자는 고독한 승부사의 기질이 없으면 버텨내기 힘들다. 텅 빈 관중석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다 보면 공허함과 야속함 등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윤 감독을 잡아주고 지켜주고 있는 철학이 있다면.

승부의 세계는 처절하다. 승리한 팀은 웃지만 패한 팀은 울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울지 않기 위해 늘 이기려고 노력한다. 지도자의 사명감은 결국 선수를 키우는 것이다. 내 제자들이 적자생존의 냉엄한 승부세계에서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어깨에는 책임감, 가슴에는 성실과 열정을!’이라는 좌우명을 늘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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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우승을 일궈낸 명감독이다. 냉철한 머리를 가진 지도자와 따듯한 가슴을 지닌 지도자 중 어느 감독을 더 선호하는가. 그 이유는?

둘 다 호감이 간다. 제자들 모두가 야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승부세계에서 살아갈 제자들에겐 냉철한 머리를 가진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지 못한 제자들에겐 좋은 추억을 안겨준 인간 윤영환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가?

- 아마추어 대학야구에서 많은 걸 이뤄냈다. 이제 당신의 야구인생에서 남은 목표와 꿈이 있다면?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나에게 너무나 많은 걸 준 경성대 야구부를 위해서도 미래와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나에게 직업과 명예를 안겨준 학교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 당신에게 야구는 도대체 무엇인가?

야구를 접한 뒤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랜시간 자리잡은 게 바로 야구다. 야구는 함께 가야할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다. 그리고 쉽게 버리고 바꿀 수도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인생의 남은 시간동안 소중한 보물이 더욱 광채가 나도록 닦는 일만 남았다.

jhkoh@sportsseoul.com

<윤영환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1962년 7월 17일

▲출생지=진주

▲출신학교=진주 중앙중~마산상고~경성대

▲실업 경력=상무~한국화장품

▲지도자 경력=경성대 코치(1995~1997), 경성대 감독대행(1997), 경성대 감독(1998~현재)

▲우승경력=2016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우승 비롯 모두 15회 우승. 준우승 16회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타격코치(금메달), 2014 인천아시안게임 타격코치(금메달), 2015 아시아선수권대회 감독(우승) 등 다수

▲상훈=2003 일간스포츠 제일화재 아마지도자상, 2010 김일배지도자상, 2013 마구마구 일구상 아마지도자상, 2013 백구회 지도자상, 2015 대한야구협회 특별상, 2015대한체육회 지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