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비디오판독 좀 하시죠!\'[SS포토]
17일 넥센히어로즈와 한화이글스의 시즌5차전 경기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9회말 서건창이 1루에서 접전을 벌인후 세이프가 선언되자 한화 김성근 감독이 비디오판독을 요청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경기 후 훈련에 대해 단장께서 우려를 표하십니다.”

한화 김성근(75)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지난 21일 대전 삼성전 패배 직후 엑스트라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에 구단 관계로부터 “훈련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사의를 표명했다. 위기에 빠진 팀을 끌어 올리기 위해 타격감이 떨어진 몇몇 선수와 특별 타격훈련을 준비하던 김 감독은 박종훈 단장이 아닌 실무 팀장으로부터 “훈련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훈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감독이 어떻게 감독인가”라며 코칭스태프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사실상 제자의 손에 유니폼을 벗게 된 셈이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김 감독은 감독의 권한에 도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김 감독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박 단장이라 취임 직후부터 김 감독을 자극해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김 감독과 박 단장의 인연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감독은 코치로, 박 단장은 신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OB에 입단한 신인 외야수였다. 김 감독이 OB를 떠난 1988년까지 한솥밥을 먹었고 지난해 단장으로 다시 만났다. 단장과 감독으로 해후한 둘은 수평이 아닌 수직관계로 입지를 굳히기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펼쳤다. 박 단장은 김 감독의 선수육성방식과 훈련방식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1군 운영에만 국한한다’는 굴욕적인 제안도 팀을 위해 수용했다. 감독 출신 단장이 선임돼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구단의 바람 대로 표면적으로는 감독의 자진사퇴 형식이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명백한 경질이라는 게 야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구단이 “나가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고 김 감독 스스로 “이렇게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는 했지만 맥락을 종합하면 사실상 경질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휘어지지 않는 김 감독의 성격을 7개월 동안 꾸준히 자극해 스스로 유니폼을 벗게 만든 구단의 노회한 전략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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