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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2인조 밴드 글렌체크(김준원·강혁준, 이상 26)가 4년의 침묵을 깨고 최근 공개한 미니앨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엔 이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이 담겨있다.
글렌체크의 새 앨범엔 이들의 기존 팬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질 요소가 가득하다. 기존의 트랜디한 신스팝 요소를 많이 걷어낸 빈자리에 R&B나 힙합, 사이키델리록, 엠비언트 등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적용했고, 사운드는 한층 어두워졌다. 앨범의 구조에서는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등 프로그래시브록 밴드의 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원(보컬 겸 기타)과 강혁준(신시사이저 겸 일렉트로닉스)은 자신들이 새 앨범에 담은 서울의 이미지를 ‘개성’, ‘활력’, ‘변화’. ‘다양한 조합’ 등의 단어로 표현하며 예전 일본 문화의 전성기 때 모습을 지금 서울에서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 앨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에 대해 설명해 달라.4년만 나온 앨범인데 또 한번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예전에 비해 큰 변화이긴 하다. 장르적으로도 변한 앨범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음악을 해오며 우리가 만든 창작물 중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이다.
-새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구성할 때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연구했다는 게 화제가 됐다.앨범을 준비할 때 실제 녹음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구상 기간이 긴 편인데 스토리텔링이나 흐름의 짜임새를 위해 신화 서사의 구조를 빌렸다. 이번엔 사이키델릭록, 프로그레시브록 뿐 아니라 오래전 힙합이나 요즘 유행하는 R&B 등 다양한 장르를 조합했다. 어떤 곡에 어떤 요소를 녹여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보니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
-공연을 많이 하는 팀인데, 공연장에서 신곡을 들려줬을 때 반응은 어땠나.공연 후기 등을 살펴보니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그럴 필요도 있었다. 정치든 뭐든 변화가 있으면 예전 것을 그리워하는 이와 새로움을 환영하는 이가 갈린다. 그걸 두려워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예전 것과 똑같은 걸 하면 제자리에 머무는 거 밖에 안되겠더라. 변화를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걸 계속 하는 건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 우리가 제안한 새로움을 싫어하는 분은 멀어질테고, 새로 들어오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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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발표 이후 4년간 이전 레퍼토리로 공연을 진행해 왔다. 어느 순간 변화해야겠다고 느낀건가.
앨범 작업을 진행하며 공연을 할 때, 재밌고 즐겁고 관객과 호흡하는 건 좋은데 레퍼토리가 너무 익숙하니 짜릿한 맛이 없었다. 곡마다 변주를 시도하지만 그 패턴도 익숙해져버리니 달리 변주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변화해야겠다고 느낀 확실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느낀 것 같다.
-2011년 가요계에 데뷔한 뒤 2012년 1집 ‘오트 쿠튀르’, 2013년 11월 2집 ‘유스!’로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3번째 앨범은 전작들과 색깔이 많이 다르다.신스팝의 영향을 많이 받은 1집은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했다. 그래서 우리가 듣기엔 프랑스에서 만든 느낌이 있다. 당시 어울렸던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자주 듣고, 우리가 빠져있던 음악의 느낌도 남아있다. 그래서 1집은 ‘네온라이트’와 ‘스모그’의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2집은 디스코, 인디팝, 훵크의 영향을 받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야자수와 바다를 보며 작업해서인지 그런 느낌이 많다. 2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야자수’와 ‘바다’다.
이번 앨범을 비주얼적인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불’과 ‘금’이 되지 않을까. 이전엔 외국에서 작업해 왔지만 이번엔 서울에서 작업했다는 게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느낀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앨범에 반영돼 있다. 이번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느낀 서울을 담은 앨범이다.
최근 몇년간 서울의 매력에 빠져있다. 해외를 나가보면 대개 도시별로 색깔이 뚜렷하고, 그 도시에서 나오는 음악적 색깔도 있게 마련이다. 그걸 어느 정도 일반화시킬 수 있는 뭔가가 도시마다 있다. 그런데 서울엔 그런게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예술가마다 개성이 다 강하다. 다 다른 것에 빠져 있고, 역동적이다. 일본 문화의 전성기 때와 흡사한 활력이 지금 서울엔 있다. 말도 안돼 보이는게 섞이고, 그 안에서 변화한다. 이색적인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그런 데서 떠오른 여러 아이디어를 새 앨범에 반영했다.
-글렌체크에게 지난 4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삶의 변화가 있었다. 이전엔 크루원들과 함께 살았는데 각자 개개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서로 흡수하는 문화도 바뀌고, 외부와 교류의 폭도 넓어졌다. 패션, 음악 등 여러 면에서 경험하는 문화의 범주가 넓어졌다. 최근 2~3년 동안엔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는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많나며 경험하고 있다. 거기서 아이디어가 생기더라.
-새 앨범 작업에 오롯이 4년이 걸린 건가.녹음이 그 정도 걸린 것은 아니지만 이전 앨범보다 많은 고민과 구상을 했다. 우린 새 앨범 작업 전에 아이디어 노트를 쓰는데 이번엔 6~7권 정도 된다. 지난 2집 때는 2~3권 가량이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거둔 수확은 음악을 만드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우리만의 노하우를 정리했다는 점이다. 예전엔 백지에서 음악을 준비해 왔다면 이제는 우리가 하려는 음악을 위해 어떤 재료와 조합이 필요한지에 대한 접근 방식이 생겼다. 우리가 하는 음악은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이번에 정립한 방식으로 많은 게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새 앨범은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상대적으로 덜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우리는 스스로 굉장히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다. 새 앨범도 그 어떤 앨범보다 대중적이다. 다만 한번에 자극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을 부분들이 숨어있다. 사람들이 우리 음악이 대중적이고 중독적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공연을 많이 하고, 즐기면 사람들이 따라올 거라 믿는다. 아직 우리의 장르, 스타일이 낯설거나 ‘이 노래에 어떻게 놀아?’하고 어리둥절할 수 있다. 우리 음악은 여러 장르가 뒤섞여 낯설게 느껴질 수 있기에 가이드도 필요하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대중성’은 음악 차트 순위에 드는지 여부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음원차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음악을 들었을 때 분석할 요소를 많이 던져주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석을 하면 굉장히 재미있어할 여러 조합들을 음악에 담았다. 그러기 위해 4년이 걸렸다. 물론 분석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도 좋은 음악을 대중성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이번에 두 측면으로 해석가능한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음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글렌체크 앨범보다는 김준원, 강혁준의 솔로 앨범이 먼저 나올 것 같다. 김준원의 솔로 앨범은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음악이 담길 것 같고, 강혁준의 앨범은 글렌체크에서 하기 힘들었던 실험적인 음악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단절됐다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으로 활동했다면 앞으로 꾸준하게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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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BANA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