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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대표팀 골키퍼 김정미가 지난 4월7일 북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남북대결에서 상대 위정심의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있다. 평양 | 사진공동취재단

[지바=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너무 오래하는 것 아닙니까.”

여자축구 남·북대결이 8개월 만에 열리는 가운데 북한 코칭스태프들이 한국의 베테랑 골키퍼 김정미(33)를 껄끄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역사적인 평양 맞대결에서 김정미가 반전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의 활약이 이어질 지 주목된다. 남·북전은 11일 오후 4시10분 일본 지바의 소가 스포츠파크에서 벌어진다.

김광민 북한 여자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은 지난 8일 지바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부 1차전 중국전을 2-0으로 마친 뒤 숙소로 이동하지 않고, 곧이어 진행된 한국-일본전을 관전했다. 한국은 이날 조소현의 페널티킥 골, 한채린의 그림 같은 왼발 발리골을 묶어 두 차례나 동점을 만들었지만 끝내 2-3으로 패했다. 김 감독은 이 경기를 모두 지켜본 뒤 엘레베이터로 향하다가 본지 취재진과 마주쳤다. 김 감독 옆을 지키던 북한 스태프는 본지 취재진과 몇 마디 나누다가 난데없이 김정미를 언급했다. “이번 대회에도 오고 김정미 골키퍼 너무 오래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침묵하던 김 감독은 한 술 더 떠 “김정미 골키퍼, 시집 안 보내나?”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 감독은 지난 6일 각팀 대표자 미팅에서도 김정미 얘기를 했다. 윤덕여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을 보자마자 “(엔트리에)김정미가 또 있네. 언제까지 데려올 것인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미는 지난 4월 평양 대결에서 골키퍼로 나섰는데 당시 전반 초반 내준 페널티킥을 막아내 한국의 1-1 무승부 및 내년 여자아시안컵 본선 티켓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북한은 위정심을 키커로 내세웠으나 김정미는 그가 왼쪽으로 낮게 찰 것을 예측하고 잡았다. 그보다 더 빛난 것은 위정심과의 신경전이었다. 김정미는 당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 북한의 5만 관중이 일방적인 응원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평정심을 되찾은 뒤 페널티킥 직전 위정심에게 “어디로 찰 거냐, 왼쪽으로 찰 거지?”라며 심리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성공한 셈이 됐다.

안방에서 대규모 관중을 불러놓고 치른 남북대결에서 비겨 여자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놓친 북한 측 충격은 컸다. 김 감독은 지난 6일 동아시안컵 여자부 공식 기자회견 및 8일 중국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난 4월 경기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의 경기만 생각하고 싶다”며 “이번엔 4월과 같은 경기를 두 번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고 연달아 예민한 반응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등 다리가 크게 불편한 모습을 보여 국내 취재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은 이번 대회 엔트리에 2001년생을 포함시키는 등 10대 후반~20대 초반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되고 있어 김정미 같은 베테랑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에이스 지소연이 소속팀 경기 출전 관계로 이번 대회에 올 수 없다. 이민아를 중심으로 일본전에 잘 싸우고도 졌는데, 북한전엔 김정미 등 노련한 선수들의 역할이 커졌다.

한국은 북한과 총 18번 싸워 1승3무14패의 초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안방에서 열렸던 2005년 8월 동아시안컵에서 1-0으로 이겨 유일하게 웃었다. 윤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2013년 부임 뒤 일본, 중국은 이겨봤는데 북한전 승리가 없다. 이번이 이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며 김 감독의 설전에 지지 않았다. 두 팀의 장외 신경전 속에 경기 결과가 더욱 궁금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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