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게 됐다. 빈터투어에서 출발해 인터라켄으로 갈 때는 주먹밥을 만들었다. 따뜻한 밥에 잘게 자른 김과 참기름 두 방울 넣어서 조물락 조물락. 그리고 소금 약간 뿌려 완성.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다.
스위스는 산악지형이라 똑바른 길이 거의 없다. 터널도 많다. 취리히를 건너 루체른을 지나가는데, 딸아이가 배꼽시계가 어김없이 작동한다. “엄마, 배고파요” 어디에 차를 세워서 주먹밥을 먹을까. 아이가 지도를 보더니 조금 더 가면 호수가 하나 나온다고 한다.
“그래. 오늘 점심은 호숫가에서 먹자” 곧 푸른 호수가 도로 왼편에서 넘실거린다.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물가로 향한다. 호수 건너편에는 해발 2132m의 필라투스*로 올라가는 산악열차가 보인다. 톱니바퀴 레일을 따라 경사 50도의 가파른 산을 기차가 거슬러 올라간다.
호수에는 유람선 하나가 막 도착한다. 알고 보니 루체른 호수가 여기까지 이어져있다. 루체른에서 배를 타고 필라투스까지 온 사람들이 산을 오르기 위해 내린다.
‘어디에 앉을까’ 호수 주변에 이파리가 푸른 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그 아래 그늘에는 눈에 확 띄는 빨간색 벤치가 여럿 있다. 그 중에 빈자리에 앉았다. 날씨는 더운데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처음엔 그늘진 곳에 앉았다가 생각보다 서늘해서, 그 옆에 햇볕이 잘 드는 벤치로 자리를 옮긴다.
좋은 경치를 바라보며 먹어서 그럴까. 점심이 더 맛있다. 도시락의 주먹밥은 정말 눈깜짝할 사이 없어졌다. 그 사이 배는 떠나고 새로운 배가 들어온다. 후식으로 사과를 먹고 커피를 마신다. 딸아이는 빵을 달라고 하더니, 물가에 떠있는 오리와 나눠 먹는다.
“여보~ 참 좋아요”“나도 좋아요”“엄마, 나두 나두~~”알프나하슈타트의 호숫가에서 마음의 점을 찍는다. 여행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밥을 다 먹은 우리가족은 찰랑거리는 호수에 발을 담그고 여유를 부려본다. 차갑다. 루체른의 물보다 더 시원하다. 햇볕이 따사로워 젖은 발이 금방 마른다. 다시 출발이다.
그런데 엽서 같은 풍경이 자꾸만 나타난다. 우리는 인터라켄에 도착할 때까지 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룽게른 호수에 차를 세운다. 비취색 수면에 작은 낚시 배가 하나 떠 있다. 그 뒤에는 만년설을 품은 알프스가 우뚝하다.
호수는 포근해 보이는 색깔과 달리 발을 담그니 빙하가 녹은 물이라서 그런지 꽤 시리다.
홀로 낚시하던 할아버지에게 어떤 물고기가 잡히는지 물어보는데, 찌가 움직인다. 할아버지가 릴을 감아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보여준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런 동화 속 호수에도 물고기가 사는구나.
인터라켄은 ‘호수 사이’라는 뜻이다. 그 지명대로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위치한다. 요정들이 살고 있을 듯한 룽게른을 떠난 아쉬움을 브리엔츠 호수가 채워준다. 매끈하게 자른 비취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브리엔츠 호수의 끝자락에 닿자 알프스 고봉 융프라우(4158m)로 향하는 등산열차의 출발지인 인터라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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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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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투스-스위스 중부 루체른 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알프스의 일부로 최고봉은 톰리스호른(2132m)이다. 알프나하슈타트에서 등산 철도로 2070m에 있는 필라투스역까지 오를 수 있다. 그곳에서 피르발트슈테터 호수와 알프스의 전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