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대건설은 국내 아파트 내장 시공분야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건실한 기업이다. 차별화된 기술력과 완벽에 가까운 노하우로 건설부문 최우수 협력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외향보다 더 시선이 가는게 있다. 덕대건설 창업주 이동희 회장의 출근시간. 그는 새벽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 집무실에 앉아있다. 사내의 그 어떤 직원보다 이른 출근이다. 회장이나 사장이면 원래 다 그런걸까?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오전 9시에 내가 출근하거나 혹은 출근 안해도 회사는 돌아갈거다”라고 껄껄 웃는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새벽 6시 30분이면 건설현장은 업무 시작 시간이다. 현장과 본사가 다르지 않다. 회장도 그 시간에 일하고 있다는 걸 느껴야 현장 직원들도 힘이 난다. 소외감을 안느낀다.‘함께 하는 정신’은 덕대건설이 IMF와 금융위기의 높은 파고를 극복해낸 힘이기도 하다. 또한 ‘현장은 힘들고 본사는 편하다’는 편견을 버리게 한다.
|
이동희 회장이 늘 외치는 구호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80년 초, 장사가 망하며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때는 진짜 ‘잘 먹고 잘 살자’가 삶의 목표 그 자체였다. 사업 초기에는 직원들에게 단결과 희망을 주는 구호였다. 요즘 시대에 ‘잘 먹고 잘 살자’고 외치면 비웃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힘든 사람들이 많다. 나는 주례를 볼 때도 ‘잘 먹고 잘 살자’를 외치게 한다”그렇다면 인생 모토가 ‘잘 먹고 잘 살자’인가?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야 그 다음 여유가 생긴다”
|
지금은 이전과 시대상황이 바뀌었다. 흙수저와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잘 먹고 잘 살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 때는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됐다. 1차 목표는 결혼해서 집을 장만하는거였다. 남자 혼자 벌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이들 교육도 시켰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벌어도 힘들다. 어떤 절벽이 생겼다. 최저생계비만 지출하고 나머지를 모두 저축해도 집을 못산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불에 임박했지만, 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나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는게 아니다. 모든게 다 오르기 때문이다. 35년 전 나는 월급 18만원을 받아 다섯식구가 먹고 살았다. 지금은 초임 200만원으로 어림없다”
|
그러니까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회장은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답을 내놓았다.
“작은 행복을 누려야 한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행복은 몸집이 작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맞다. 최근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가 4000억원에 자신의 회사를 로레알 그룹게 매각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건 특출난 경우다. 일반적인 사람은 그렇게 못한다.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운좋게 태어나는 것도 실제 많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은 그나마 낫고 중소기업 이하에서는 빠듯하다. 대기업도 평생보장이 아니다. 무한경쟁에서 한 두 명만 살아남는 구조다. 그래서 행복을 찾으려면 우선 자기 범위 내에서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야 한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고 작은 것 부터...”평범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 그런데 젊은 세대가 작은 것부터 하나씩 성공하면 진짜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점은 의문이다.
진짜 성공은 무엇일까. 이 회장은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가 관건이라고 설파한다.
“한탄만 하지 말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기댈데 없고 의지할데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가 발전하고 세분화 될수록 더 힘들다. 도와주는 사람도 줄어든다. 성공은 스텝바이스텝이다. 공장에서 일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 기술자가 되는 것이고 직장인이면 잘리지 않고 임원이 되는게 성공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목표를 정하고 차근차근 이뤄나가는거다. 임원이 된 이후 사장까지 가는 건 그 이후의 문제다. 우선 손에 잡히는 목표부터 이뤄야한다”
|
십 수년전에만 해도 그랬다. 꿈이 뭐에요?
“대통령요”많은 어린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허황된 꿈은 꾸지 마라고 했다.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이라며 성공의 과대포장을 멀리했다.
“식당을 하면 적자 안나게 운영해 가며 돈을 벌면 성공이다. 옷 가게면 재고 안남기고 계속 굴러가면 성공이다. 성공을 너무 과하게 잡지 마라. 일상의 성공. 내가 일하는 상황에 맞게 목표를 정해야 한다. 목표에 다다르면 다음 목표를 또 정하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직장인의 경우, 나만 노력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분투하고 있다. 결국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그게 행복의 최선책인가?
“행복은 몸집이 작다. 다른데 보지 말고 지금 분야의 고수부터 되자. 정비를 잘 해서 기능장이 되면 그게 성공이다.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야간대학을 다니고 박사가 되라? 불가능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조언은 잘못이다. 공고를 나와 취직했으면 자신의 기술에서 만큼은 최고가 되면 성공한거다. 그에 따라 대우와 보상이 온다. 대접 받는다. 꿈같은 목표를 정하지 마라는거다”
|
이 회장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창업주로서 성공했다.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건설업은 하고 싶어 한게 아니다. 아버지가 목사였다. 성격이 불같이 곧으셨다. 불의를 참지 못했고 굉장히 청렴하셨다. 교단 집행부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늘 쓴소리를 하셨다. 그러다보니 만날 지방 교회에 부임했다. 내가 중학교때는 파주에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염소를 키웠다. 새벽 4시에 젖을 짜 배달을 했다. 살림이 좀 나아졌다. 그런데 내가 대학갈 무렵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완전히 망했다.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친구 한 명이 석고보드 시공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소개해줬다. 당시 석고보드라는 제품이 처음 보급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아파트는 짓기만 하면 팔리는 시기였다. 일이 넘쳤다. 아파트 시장이 확대되며 어느새 나도 촉망받는 사업가가 되었다”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 회장 역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성공의 기류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운은 성찰의 결과로 보는게 맞다.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1994년 공사현장에서 천장틀이 떨어지는 하자가 발생했다. 당시 내가 현장관리 이사였다. 원청업체에서 나보고 해결해라고 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2억원, 그건 그때까지 모은 전재산이었다. 그 돈을 모두 털어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의리와 신용이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원청업체에서 내게 ‘회사를 등록해서 함께 일하자’고 했고 1995년 덕대건설을 설립하게 됐다”신용과 의리. 여기에 이 회장의 W는 하나 더 있는 듯 하다. 사람과의 인연. 인터뷰 후 덕대건설 윤기현 부사장이 “이 회장은 한번 사귄 사람은 끝까지 간다. 동반 성장이다. 평생가는 걸 넘어 관계를 무덤까지 가지고 갈 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라고 귀띔했다.



![[포토]후랭코프, 이번엔 체인지업 승부](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2018/09/21/news/2018092101001022800076142.jpg)
![[포토]후랭코프, 이번엔 체인지업 승부](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2018/09/21/news/2018092101001022800076144.jpg)

![[포토]후랭코프, 이번엔 체인지업 승부](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2018/09/21/news/2018092101001022800076146.jpg)
![[포토]후랭코프, 이번엔 체인지업 승부](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2018/09/21/news/201809210100102280007614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