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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북측에 유치사무소 제안을 해 둔 상태다. 이왕이면 (IOC 본부가 있는)스위스 로잔이 좋다.”
지난달 한국 스포츠 외교는 모처럼 경사를 맞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신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기존 유승민 선수위원이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당선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나 30대 유 위원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경륜 있는 IOC 위원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당선은 갈수록 국제스포츠계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한국에 희소식이었다. 이 회장이 IOC에 입성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도 SNS를 통해 축하를 보내는 등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 회장이 평생의 사업으로 꼽고 있는 2032년 남·북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 활동이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에서 만난 이 회장은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의 효과를 설명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불러온다는 측면에서 서울-평양 올림픽 만큼 명분, 실리 모두 갖출 수 있는 대회가 없다. 2021년엔 대회 유치가 확정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서울-평양 올림픽? 철도보다 중요한 통신이 열린다”이 회장이 IOC 위원이 된지 보름이 지났다. 그는 “삶에 뭐가 바뀐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져서 걱정이 앞선다”며 “올림픽 유치를 위해 통일부와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게 이뤄지면 (남·북 관계에)엄청난 변화가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회장이 지목한 ‘변화’는 올림픽 유치에 따른 도로 및 철도 건설, 관광객 유치 등 눈에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북측이 전 세계에 전산망을 개방한다는 게 크다. 올림픽을 개최하면 전산과 관련한 인프라를 대폭 보강해야 하는데 이는 북측이 모든 것을 열겠다는 것을 뜻한다. 통신을 개방하면 엄청난 변화가 따라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회장은 IOC 당선 직후 북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카운터파트너 김일국 체육상과 로잔 IOC 총회에서 3차례 만났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2월 북·미 회담 실패로 중단된 서울-평양 올림픽 유치 움직임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지난달 22일에도 만나고 23일엔 식사도 했다”며 구체적인 회동 내역을 밝힌 뒤 “그 쪽도 체육인들은 (올림픽 개최, 단일팀 참가를)하고 싶어한다. 다만 정치가 선행돼 잘 풀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판문점에서 만난 만큼 모든 흐름이 잘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올 연말이면 가시적으로 (정치 문제들이)좋아지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그는 IOC 위원 당선 소감을 전하면서 2년 뒤 여름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IOC 총회 때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개최 확정 플랜을 내놓기도 했다. 단순히 ‘2년 뒤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는 올림픽 개최 7년 전 유치 도시를 투표 통해 결정했으나 이번에 시기와 방법 등이 확 바뀌었다. 특히 북한의 사정을 고려하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의 임기까지 생각했을 때 2021년엔 올림픽 공동 개최가 확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회장은 내년 겨울 서울에서 열리는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ANOC) 총회를 계기로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대세로 몰아가겠다는 생각이다. “IOC 위원들과 종목별 국제연맹(IF) 회장, 206개 NOC 대표 등 전 세계 스포츠 인사 1500명이 ANOC 총회에 참석한다”며 “이들을 데리고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남북 분단 상황을 직접 체험하게 할 생각이다. 더 나아가 참가자들이 금강산 혹은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주제 발표를 한다면 서울-평양 올림픽 개최에 굉장히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일국 체육상에겐 이번에 공동유치사무소 개설을 제의했다. 서로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치적 제약 아래서도 꾸준히 공동 개최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굴해내고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IOC 본부가 있는 로잔에 사무소 만들자는 구상이 신선하다. 이 회장은 “IOC 본부가 있는 곳에 유치사무소를 두면 올림픽과 관련된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겠는가. 일을 긴밀하게 하자는 측면에서 로잔 사무소를 제안했다”며 “그게 어렵다면 개성에 있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 유치 관련 시설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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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올림픽 성적 우려? 스포츠인들은 사기로 먹고 산다”
요즘 엘리트스포츠가 위기다. 한국은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24년 만에 일본에 2위를 내주고 3위로 떨어졌다. 내년 도쿄 올림픽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나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종합 2위, 2012년 런던 올림픽 종합 5위를 진두지휘한 이 회장의 마음이 쓰릴 수밖에 없다. 런던 올림픽 땐 역대 최다인 금메달 13개를 수확했다. 이 회장은 “일본이 개최국으로서 투자를 많이 했다. 유도와 양궁, 사격 등 우리 전략 종목과 겹쳐 걱정된다”며 “도쿄에선 금메달 5~7개를 따내 10~15등을 하지 않을까 전망된다”고 했다.
이 회장이 진단하는 엘리트스포츠의 하향세 이유는 ‘사기’다. 이 회장은 “박태환, 장미란, 진종오, 이용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의 뒤를 이을 선수들이 보이질 않는다”며 “결국 스포츠 선수들은 사기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학교 체육이 부실해졌고, 기업들의 스포츠 지원도 축소됐다. 예전엔 큰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기업에서 직원으로 데려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기업들이 체육에서 손을 떼고 있다. 돈을 내고도 욕을 먹으니 누가 스포츠와 손 잡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회장은 리우 올림픽 때 펜싱 남자 에페 박상영이 기적 같은 역전극으로 금메달 따낸 것 등을 예로 들며 “스포츠는 단 몇 초 만에 국민들을 들었다놨다 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며 “군사정권의 산물로 깎아내릴 것이 아니라 지금 드러난 엘리트스포츠의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스포츠 전반적인 개혁 방안을 4차에 걸쳐 권고안으로 제시했는데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특히 소년체전 폐지, 학원 선수들 주중 대회 금지 등에 대한 반발이 크다. 이 회장은 “혁신위의 문제 제기엔 공감한다”면서도 “모든 사안엔 음양과 명암이 있다. ‘넌 틀렸고, 난 무조건 맞다’는 식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교집합을 더욱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위에서 ‘이게 맞으니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벽돌을 쌓아가듯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며 혁신위의 일방통행식 권고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올림픽 공동 개최 외에 체육인 일자리 만들기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했다. “체육 관련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 지금 스포츠계에 제대로 된 일자리가 1만개도 되질 않는다. 사회가 운동 선수에게 ‘공부하라’고 외치듯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운동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큰 문제인 10대의 체육시간 부족부터 해결해야 ‘체육인 일자리 창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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