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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대업을 향한 칠부능선을 넘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2019시즌 최고 투수 류현진(32·LA 다저스)이다.
지긋지긋했던 쿠어스 필드 악몽에서 탈출했다. 류현진은 1일(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80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0-0 동점 상황에서 등판을 마치며 선발승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지난 6월 29일 같은 장소에서 겪었던 4이닝 7실점 부진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콜로라도가 최정예 선수들을 나란히 라인업에 올렸지만 류현진은 투수들의 무덤을 극복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펼쳐 보였다.
◇봉인했던 슬라이더 구사…천적 아레나도 제압류현진에게 올해 스프링캠프 테마는 슬라이더였다. 컷패스트볼보다 느리지만 횡으로 움직이는 각도가 큰 슬라이더 장착을 목표로 스프링캠프 기간 불펜피칭에 임했다. 슬라이더를 통해 좌타자 상대 바깥쪽을 정복하는 그림을 그렸다. 순조롭지는 않았다. 포수 오스틴 반스와 불펜피칭에서 던진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거나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났다. 당시 류현진은 “패트릭 코빈이 던지는 슬라이더와 비슷한 궤적의 구종을 생각하고 있다. 불펜피칭에서 조금씩 던지고 있는데 아직 익숙하지는 않다”고 새 구종 장착이 쉽지 않음을 밝혔다. 덧붙여 “반스도 슬라이더를 던지자 깜짝 놀랐다. 무슨 공을 던졌는지 물어보더라. 반스는 컷패스트볼이 좋은데 굳이 슬라이더까지 던져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며 슬라이더 구사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류현진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슬라이더를 봉인했다. 대신 네 가지 구종(직구, 컷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을 보다 완벽하게 구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봉인했던 슬라이더가 이날 쿠어스필드에서 등장했다. 좌타자 찰리 블랙몬, 욘데르 알론소, 토니 월터스 등을 상대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80마일대 초중반 슬라이더를 섞어 던져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최근 자신을 향한 현미경 분석에 당당히 반격했고 콜로라도 타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구종을 마주하자 허무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장 큰 산이었던 놀란 아레나도도 훌쩍 넘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자신을 상대로 타율 0.609(23타수 14안타) 4홈런 OPS(출루율+장타율) 1.944로 맹타를 날린 아레나도에게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1회말 아레나도와 첫 번째 승부에서 3루 땅볼, 4회말 두 번째 승부에선 초구 컷 패스트볼로 우익수플라이, 6회말 마지막 승부에선 유격수 땅볼로 아레나도를 돌려세웠다.
◇압도적인 방어율 1.66…사이영상 향해 성큼류현진은 이날 무실점 피칭을 통해 방어율을 1.66까지 끌어내렸다. 내셔널리그 방어율 부문 2위 그룹을 0.7점 차이로 따돌리며 논란의 여지없는 ‘넘버 원’이 됐다. 물론 승리에 제동이 걸린 것은 다소 아쉽다. 6월 5일 애리조나전부터 이날까지 10경기서 방어율 1.87로 맹활약하고 있으나 이날처럼 타선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내야진의 실책성 수비로 3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사이영상 수상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승이 사이영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은 10년 전 얘기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결과가 이를 뚜렷하게 증명한다. 2018시즌 사이영상 수상자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은 10승 9패에 그쳤지만 방어율 1.70으로 18승 7패 방어율 2.53을 올린 경쟁자 맥스 셔저(워싱턴)를 압도했다. 디그롬은 전미야구기자협회 사이영상 투표에서 1위표 30개 중 29개를 독차지했다. 선발승은 동료 야수들의 타격과 수비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현재 내셔널리그 다승 1위는 류현진보다 방어율이 2배 가량 높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방어율 3.26)의 14승이다. 승수로 선발투수의 기량을 판단하는 것은 구식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류현진은 시즌 종료까지 9경기 가량 등판을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1점대 방어율을 사수하면서 15승 내외만 기록하면 사이영상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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