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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대전시티즌과 하나금융그룹, 그리고 황선홍 감독이 K리그에 새 바람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전광역시와 하나금융그룹은 5일 대전시청 대회의실에서 ‘대전시티즌 투자유치 협약’을 체결했다. 대전시는 지난 8월부터 하나금융그룹과 투자 유치를 놓고 두 달 동안 협상을 벌여왔다. 시민구단인 대전을 하나금융그룹이 인수, 기업구단으로 전환하는 작업이었다. 장기간 논의 끝에 하나금융그룹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큰 틀에서 합의를 마쳤다. 향후 양측은 협상단을 구성해 구체적인 투자 방식과 예산 규모, 월드컵경기장과 클럽하우스 등 관련 시설 사용조건 등 세부적인 사항을 놓고 논의한 후 올해 안으로 본계약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대표적인 ‘풋볼 프렌들리(친 축구)기업’이다. 1998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공식후원했다. 현재도 축구협회와 국가대표축구팀, K리그 메인스폰서를 담당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K리그 구단을 인수해 운영하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투자유치 요청을 수락하고 앞으로 사회공헌사업 차원에서 대전시티즌을 명문구단으로 육성하려는 하나금융그룹 측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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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22년 전인 1997년 계룡건설 등 지역 기업 4곳의 컨소시엄을 통해 창단한 유서 깊은 팀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계룡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이 차례로 부도가 나 기업구단 형태로의 운영이 어려워졌다.결국 2006년 대전시가 운 주체가 되는 시민구단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대전은 최근 몇 년간 K리그의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강등과 승격, 재강등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겪었고, 전 대표이사와 감독 등이 불미스러운 일로 도마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성적도 뒷받침되지 않아 올해에도 하위권인 9위에 머물렀다. 기업구단 시절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김은중과 이관우 등 특급 스타들을 배출하는 인기구단이었지만 현재는 존재감이 미비한 팀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 대전시는 1년에 최대 8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축구단 운영에 부담을 느껴 허 시장 직접 나서 새 주인을 찾았다. 마침 하나금융그룹을 만나 13년 만에 기업구단으로 거듭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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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하는 대전을 맡을 사령탑으로는 황선홍 전 FC서울 감독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지도력이 이미 입증된 지도자다. 포항에서 K리그1(2013년), FA컵(2012, 2013년) 우승을 차지했고, 2016년 서울에서도 K리그1 챔피언에 등극하는 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포항 시절에는 어린 선수들을 성장시켜 완성도 높은 팀을 만든 경험이 있어 2부리그 소속 대전의 승격과 명가 재건을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황 감독은 지난 시즌 서울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불운하게도 올해 초엔 중국 연변FC가 해체돼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지난 1년간 어려운 시기를 겪은 황 감독 입장에서는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황 감독이 대전의 승격을 이끈다면 팀은 물론이고 개인의 명예회복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2002 신화의 주역으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황 감독은 고향이 대전과 인접한 충남 예산이라 상징성 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한국-이탈리아전이 열렸던 곳이라 황 감독에게도 감회가 깊다.

대전의 급격한 변화가 K리그 지형도에 변화를 일으킬지 관심이 쏠린다. K리그에 기업구단이 탄생하는 것은 지난 2014년 서울이랜드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아쉽게도 서울이랜드는 승격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창단 초반의 열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대전의 경우 신규 창단이 아닌 재창단 개념이라 시행착오를 출일 여지가 있다. 선수단과 사무국과 유소년팀 등 인프라, 제반 시설 등 문제도 걱정이 없다. 일정 부분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변수가 적다는 게 장점이다. 게다가 대전시는 대전월드컵경기장과 클럽하우스 등의 운영 전권을 넘길 구상을 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투자뿐 아니라 자체적 수익 사업을 통해 추가 예산까지 확보할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구상대로 단계를 밟아간다면 대전 스스로 비상하는 것을 넘어 K리그 전체에 활력소가 될 여지가 있다. 기업구단으로서 성공적 발자국을 남기면 기존 시도민구단에 큰 자극이 될 수 있고, 다른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도 기대할 수 있다. K리그 지형도를 바꿀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2019년 대구가 축구전용구장으로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2020년엔 대전이 그 바통을 이어받으려고 한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