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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대건고 감독이 14일 인천환경공단 승기사업소에서 본지와 만나 인터뷰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인천 | 정다워기자

[인천=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김정우(37) 인천 대건고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중앙미드필더였다.

김 감독은 지난 2016년 은퇴한 후 휴식하다 올해 K리그1 인천 산하 유스팀인 대건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10월에는 전국체전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김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4경기에서 모두 출전해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성격도, 플레이스타일도 튀지 않아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축구팬 사이에서는 ‘믿을맨’으로 불렸던 미드필더였다. 14일 인천환경공단 승기사업소 훈련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사실 제가 크게 두각을 드러낸 선수는 아니었다고 본다. 다른 분들께서 좋게 봐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다”라며 “아마 제자들은 저를 잘 모를 것이다. 선수 시절 동영상을 보고 와 몇 마디 하기는 하는데 재밌더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땐 ‘뼈’ 별명 싫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체중이 68~69㎏에 불과했다. 신장이 184㎝로 큰 편인데 워낙 마른 체형이라 별명에 대부분 ‘뼈’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뼈정우’를 비롯해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드필더였던 대런 플레처에 빗댄 ‘뼈레처’, 뼈에 스트라이커를 합친 ‘뼈트라이커’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김 감독은 “그땐 먹는 즐거움을 몰랐다. 워낙 예민해 경기 전 날 잠도 못 잤다. 마른 게 컴플렉스였는데도 잘 먹지 않아 살이 찌지 않았다”라며 “저도 제 별명을 많이 들었는데 당시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원래 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 괜히 별명 때문에 마른 면이 부각돼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것도 관심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지금은 80㎏ 근처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피지컬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김 감독은 악착 같은 플레이로 수비형 미드필더 정석을 보여줬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기성용과 짝을 이뤄 탄탄한 중원을 구축했다. A매치 71경기에 나갈 정도로 오랜 기간 태극마크를 유지했다. 김 감독은 “제가 마른 체형이라 힘이 부족했다. 저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기 싫어 치열하고 악착 같이 싸웠다. 2007년 J리그 나고야에서 뛸 땐 한 시즌 동안 옐로카드를 17장이나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미숙했던 시절인데 이후로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요령이 생겼고, 수비력도 좋아졌다”라고 회상했다.

2010 FIFA 남아공월드컵 한국-아르헨티나
메시(오른쪽)를 마.크하는 선수 시절 김정우최승섭기자.

◇“수아레스 결승골,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나”

김 감독에게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기억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김 감독은 “2006년 월드컵에 가지 못해 간절했다. 막상 가니까 정말 좋더라. 팀이 워낙 화려하고 좋았다. (박)지성이 형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주장 중 최고였다. 그 정도 선수면 대충할 법도 한데 그런 적이 없다. 소속팀에서는 헌신적인 면이 부각됐지만 대표팀에서는 개인기가 월등한 공격수였다”라며 선배 박지성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다른 선수들 능력도 탁월했다. 함께 중원을 책임졌던 기성용은 패스의 질이 워낙 좋아 제가 편하게 뛸 수 있었다.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기성용은 이호와 함께 제가 꼽는 최고의 파트너”라고 했다. 김 감독은 여전히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는 “리오넬 메시는 희한한 선수였다. 도무지 움직임을 종잡을 수가 없어 힘들었다. 그래도 실점은 안 했으니 조금은 잘 막은 것 아닐까”라며 “16강전 루이스 수아레스 결승골 궤적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워낙 우리가 경기를 잘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아 있다. 그때 8강에 올랐다면 더 높은 곳까지 가지 않았을까”라고 월드컵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공격수 전향? 전 미드필더 체질”

김 감독은 2010년 상무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팀 사정상 스트라이커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의외로 한 시즌가 15골을 뽑아내며 맹활약했다. 김 감독은 “동계훈련 때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연습경기에서 골도 넣고 재미를 느꼈다. 공교롭게도 그 시즌 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인천을 상대로 2골을 넣고 자신감 생겼다. 전혀 몰랐던 본능이었다. 사실 공격수는 초등학교 때 1년 정도만 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땐 리베로였고, 공격수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미드필더만 봤다. 그런데 축구는 자신감이더라. 골이 들어가니 욕심도 생겼다. 심지어 2011년 대표팀 경기 온두라스전에서도 공격수로 뛰어 골도 넣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공격수보다 미드필더가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그래도 전 미드필더 체질이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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