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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동남아 최대 라이벌전이자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사령탑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박항서 감독은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박 감독은 18일 베트남축구협회 미팅홀에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G조 5차전 태국과의 홈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중함보다는 당당함으로 임했다. 두 나라는 19일 오후 10시 베트남 미딩국립경기장에서 격돌한다. 베트남-태국전은 동남아 ‘슈퍼 클래식’으로 불리는 등 지역을 넘어 아시아 대륙 전체의 시선을 모으는 대결이다. 승점 10으로 G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베트남은 태국마저 누를 경우, 단 12팀이 초대받는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7부 능선을 넘게 된다. 반대로 태국이 이기면 양국은 물론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말레이시아(이상 승점 6)까지 4개국이 혼돈에 빠진다.
베트남 전역이 이번 라이벌전 승리를 강하게 열망하고 있다. 승점 3을 떠나 베트남 축구의 큰 산과도 같았던 태국을 넘어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에 더해 태국 대표팀 사령탑이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을 16강으로 이끈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어서 더 큰 화제다. 아시아 4개국이 축구 실력을 겨룰 무대가 하노이에 깔린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날 회견장엔 베트남과 태국, 그리고 한국 취재진까지 어우러져 100여명이 몰렸다. 지난 13일 UAE 기자회견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높은 관심 속에 박항서 감독에게 처음으로 던져진 질문은 적장 니시노에 관한 것이었다. 베트남 취재진은 니시노 감독이 철저하게 정보를 숨긴 채 훈련한 것 두고 질문했다. 지난 16일 베트남에 입국한 니시노 감독과 태국대표팀은 베트남축구협회에서 마련한 훈련장을 거절하고 개별적으로 구한 하노이 외곽 훈련장에서 원정 경기를 대비하고 있다. 베트남은 물론 태국 취재진의 접근까지 막고 있다. 말레이시아전 1-3 패배가 정보 유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니시노 감독이 이번엔 태국대표팀을 꼭꼭 숨긴 것이다. 박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는 “태국의 행동은 일반적인 것”이라며 “다른 국가에서도 경기를 앞두고 비공개 훈련을 많이 한다. 특별한 게 아니다. 개의치 않는다. (그런 건)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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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질문부터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한 박 감독은 자신이 지휘하는 베트남 대표팀의 정보는 자신 있게 공개했다. 베트남 취재진은 벨기에 신트 트라위던 소속으로 최근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는 스타 플레이어 응우옌 콩푸엉의 출전 여부를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지체 없이 “예스”라며 답변했다. 현장의 베트남 취재진이 모두 박수쳤다. 한 명이라도 선발 라인업 정보를 공개한 것에서 박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의 자신감이 드러났다. 이어 태국 취재진이 일본 J리그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원정팀 에이스 차나팁 송크라신과 베트남 주전 공격수 응우옌 쾅하이를 비교하는 질문을 던지자 “송크라신이 일본에서 뛰는데 쾅하이가 일본에서 뛰지 못할 이유가 어딨느냐. 실력으로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일본에 가라’ 조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 “참고로 말하고 싶다. 우리(베트남)보다 높은 수준의 스페인에서 쾅하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라며 허리를 곧추 세웠다.
박 감독의 ‘자신감 시리즈’는 이어졌다. 그는 “태국은 니시노 감독이 오고난 뒤 확연히 짧은 패스가 많아졌다. (지난 달 이겼던)UAE전을 보면 송크라신을 중심으로 공격수들이 자리를 많이 바꾸면서 중앙에 짧은 패스가 공급되고 있다”며 “이런 것을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경계했다. 물론 상대의 약점도 들춰냈다. 박 감독은 “(태국이 패한 14일)말레이시아전을 봐도 태국은 실점 장면에서 수비 뒷공간을 많이 허용한다. 짧은 2대1 패스에 헛점을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을 노릴 것”이라고 했다. 선수 기용법은 물론 승리를 위한 전술까지 드러내며 태국과 차별화를 이뤘다.
‘박항서 매직’이 완성되기 위한 마지막 점은 정신력이다. 축구만 놓고 보면 베트남은 이제 태국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두 나라 맞대결이 주는 중압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한·일 월드컵 등 산전수전 다 겪은 박 감독도 이를 주목했다. 그는 “이 경기가 2019년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다. 특히 최대 라이벌 태국과 맞붙는다. 단 하나 조심스러운 건 이 부담이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코치진이 선수들에게 집중하되 긴장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부임 2년간 실패가 없었던 박 감독, 이제 또 다른 성공을 위한 90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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