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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스스로는 떳떳합니다.”
‘스케이터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안현수(34·러시아명 빅토르 안)는 쉽게 답변하지 못했다. 그간의 산전수전을 돌이키느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다소 시간이 지난 뒤 안현수의 입에서는 ‘평창’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평창 때 있었던 일이 가장 힘들었다. 도핑은 스포츠에서 굉장히 민감하고 금기시되는 문제다. 제 나름대로 러시아빙상경기연맹과도 대응을 해봤지만 해결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됐다”며 무거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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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평창행 불발된 진짜 이유는?
과거 안현수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삼으려 했던 건 이미 공공연했다. 결과적으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독립위원회를 구성한 뒤 2016년 발간한 ‘맥라렌 리포트’에 이름이 거론된 게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조직의 수장을 맡았던 캐나다 법학 교수 리처드 맥라렌이 작성했고, 러시아의 조직적인 금지약물 복용과 은폐 사례를 밝혀 전 세계 빙상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8년 1월 맥라렌 리포트의 신빙성을 인정해 국가 주도로 조직적인 도핑을 벌인 러시아에 국가 자격으로 평창 올림픽 참가를 금지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도핑 규정을 모두 통과해 결백이 입증된 선수는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 있었지만, 안현수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 IOC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도 해봤으나 번복되지 않았다.
세간에는 ‘진짜 잘못이 없었다면 끝까지 평창행을 강행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안현수는 “사실 결정이 나오고 나서는 내게 올림픽 출전 여부가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커리어가 부정당할 위기에서 메달 하나를 추가하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평창올림픽까지 남은 기간도 많지 않았기에 마음은 이미 많이 접힌 상태였다. 제일 중요한 건 도핑 문제를 해결하는 거였다. 선수 생활을 20년이 넘게 해왔는데 그 하나 때문에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을 하면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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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정확한 사유를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답답함을 호소했다. “IOC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선수 개개인에게 대답할 의무가 없다’뿐이었다. 하지만 난 선수로서 그 이유를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IOC에서 제시한 도핑 규정 리스트도 굉장히 까다로웠는데, 내가 어떤 조항에 걸려서 통과하지 못했는지도 아직까지 모른다”며 “2014 소치 올림픽 때 소변 바꿔치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실제로 그 대회 메달리스트 중 따로 징계를 받은 선수도 있는데, 그들은 미리 제소되고 앞서 메달까지 박탈당했다. 나도 실제로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대회 기간을 포함해 성적이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거기에 포함도 안 됐는데 평창 대회 직전 출전 불가가 결정됐다. 결정을 뒤집기 위해 뭘 증명해야 할지 몰랐고 시간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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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의심스러울 수 있죠…전 떳떳합니다”
사실 2018 평창 대회 당시 안현수의 기량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러시아 대표팀은 그해 9월 안현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했고, 평창에 한이 남은 안현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스스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알리며 자연스레 은퇴 수순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9~2020시즌 월드컵 1차 대회에 깜짝 등장한 안현수는 2관왕(금2 은2)까지 오르며 화려하게 복귀를 신고했다. 그의 한국 나이는 이제 35세, 앞서 2년여의 공백기가 있었기에 더 믿기지 않는 성적표였다.
그는 “사람들은 과정을 보지 못한다. 내 성적만 보면 또 의심스러울 수 있다. 평창 전 성적이 안 좋아서 은퇴까지 생각했던 선수가 공백기를 갖고도 어떻게 저렇게 복귀를 할 수 있나 싶을 것이다. 꼬리표를 해결하지 못했고 나도 답답한 부분이지만, 이 운동을 택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며 “현재도 주기적으로 계속 도핑 테스트 받고 있다. 아무 문제가 없으니 스스로는 떳떳하다. 그래서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문제가 있었다면 현재까지 운동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절대 용납을 못 했을 것”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이번 시즌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는 내년 3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시작한 시즌인 만큼, 안현수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멀리 보기 보다는 우선 이 대회까지 완주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가장 최근 한국에서 경기한 게 2017년이었다. 당시는 뭔가 보여드릴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내년 3월 한국 쇼트트랙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 중 1~2명이라도 날 응원해주는 분이 계신다면,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게 선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확실하진 않으나 이번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다면 그게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시작한 선수 생활을 한국에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그 또한 나한테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마지막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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