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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소윤기자] 두산의 ‘캡틴’이 돌아왔다.
오재원(35)은 올시즌을 앞두고 3년 19억 원에 두산과 재동행을 택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대우와 ‘주장’이라는 무형적 가치를 모두 인정해준 셈이다. 그러나 지난 시즌 98경기 타율 0.164(3홈런)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낸 탓에 물음표가 따라붙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그간 지명 타자로만 활약했던 최주환이 주전 2루수 자리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경쟁 구도까지 형성됐다. 개막전까지 주전 2루수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김태형 감독은 오재원을 교체 카드로 기용하는 대신 주전 자리를 최주환에게 맡겼다.
개막 초반까지만 해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는 어려웠다. 최주환의 타격감이 식을 줄 몰랐고, 수비에서도 꾸준히 제 몫을 다했기 때문이다. 발 디딜 틈 없어 보였으나 뜻밖의 기회가 왔다. 주전 1루수 오재일이 최근 옆구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두산 내야진에 큰 지각 변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재일이 맡았던 1루수 자리는 최주환에게 넘어왔고, 2루는 자연스레 오재원이 꿰찼다.
지난 21일 잠실 NC전부터 매 경기 2루수 겸 5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게 된 오재원은 맞는 ‘선발’ 옷을 입자 훨훨 날았다. 우선은 수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몸을 날리는 다이빙 캐치와 안정적인 수비로 중요한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고, 김재호와 키스톤 호흡도 여전했다. 24일 삼성전에서도 2루수로 선발 출장해 빠른 주루플레이와 민첩한 수비 센스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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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보였던 타석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21일 NC전에서는 5회 말 2사 1,2루 상황 경기를 뒤집는 역전 적시타를 쳤고, 23일 삼성과 원정 경기에서는 5회 1사 만루 상황 삼성 신인 투수 황동재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터트렸다. 오재원의 시즌 3호 홈런이자 통산 4번째 그랜드 슬램이다. 홈플레이트를 밟으며 특유의 세리모니를 보이는 동안엔 그간의 갈증을 털어내기라도 한듯 환한 미소까지 보였다. 두산도 이 홈런을 앞세워 10-6 승리를 차지했다. 이날 4타수 2안타 4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펼친 오재원의 타율은 0.387로 훌쩍 뛰었다. 지난 시즌과는 확연히 다른 페이스다.
강해야 할 때 강하고,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해내는 ‘승부사’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불펜진 난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으로선 타격과 수비 모두에서 제 몫을 해주고 있는 오재원의 활약이 여느 때보다 반갑다. 앞서 오재원은 “지난 일은 생각하지 않겠다. 좋았던 때를 기억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자신이 팀에 필요한 이유를 스스로 풀어내고 있다. ‘캡틴’의 품격이다.
younw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