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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우리나라 최초 검사인 이준 열사에 대한 관심에 쏠리고 있다. 그는 검사가 된 지 33일 만에 면직됐으나 이후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가 된 인물이다.
1859년 12월 18일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난 이준 열사는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법관양성소 1기생으로 졸업, 한성재판소 검사보가 됐다. 우리나라 검새 1호인 셈이다. 강직한 성품의 이준 열사는 당시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에 나섰으나 모함을 받아 33일 만에 검사직에서 면직당했다.
이후 그는 1898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독립협회에 가담하는 등 일제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다.
이준 열사는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에 참석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만국에 알리고자 했으나일제의 방해공작으로 끝내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
이준 열사는 얼마 후인 1907년 7월 14일 헤이그의 숙소에서 객사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제 조선통감부는 병사설을 주장했으나 분사(분에 못 이겨 죽음)했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다. 그의 시신은 헤이그 시립공동묘지에 묻혔다가 사후 56년 만인 1963년 서울시 북한산 자락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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