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101010008371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숱한 해결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개혁을 놓고 구조냐,인물이냐는 문제의식의 출발에서부터 맥락을 관통할 수 있는 대안의 선택까지.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한국 체육개혁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극적 사태에 대한 국민적 공분 탓이었을까. 체육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그 어느때보다 높았기에 기대가 크지만 자칫 개혁이 또다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머물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새 정부 출범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체육개혁이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한 데는 아마도 무신경하게 넘어간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봄 직하다. 체육계의 숱한 사건·사고에서 정부를 비롯해 각종 체육단체와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개혁의 밑그림을 그렸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는 중요한 걸 놓쳤기 때문일 게다. 곰곰이 따질 걸 다 따져보니 진단과 처방에서 나올 만한 건 다 나왔지만 꼭 하나,빠진 게 있다. 체육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개혁을 논할 때 이상하리만큼 쏙 빠져버린 그 한가지는 바로 학부모와 선수의 문제다.

지금까지 체육개혁을 거론할 때 학부모와 학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지도자로부터 핍박받는 피해자로만 간주했다. 개혁의 대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권력을 거머쥔 지도자로 규정하는 관성적 발상이 정책 결정자들의 대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도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자는 누구일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왜 그동안 체육계에서 논의되지 못했던가. 아마도 사건이 터지고 나면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학부모와 선수에게 개혁의 대상이라는 올가미를 씌우기는 힘들었기 때문일 게다.

자,이제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 보자. 지도자들의 폭력 등 반인권적 행태나,금품 수수와 같은 각종 비리는 그들 스스로의 권력에서 나왔을까. 결코 아니다. 학부모들이 말도 안되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지도자에게 온전히 갖다 바쳤다. 왜냐구? 애오라지 자기 자식을 잘봐주십사 하는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문제가 곪아터지고 사건이 사회 이슈로 부각됐을 때 학부모는 대체로 어떤 행동을 취할까.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피해자의 편에 서기를 꺼리는 것은 물론 사건의 축소와 은폐,더 나아가 역겹게도 가해 지도자를 보호하는 ‘공범의 커넥션’에 편입되는 게 일반적인 행태다. 정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선수 역시 별반 차이가 없다. 승리가 최고의 가치라는 그릇된 체육철학에 의식을 저당잡힌 그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용기를 내서 문제제기하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 또한 학부모처럼 지도자의 권력에 두려움을 느끼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반인권적인 체육문화와 조직에 주인이 아닌 노예로 길들여진 선수들은 오로지 자신만 피해를 입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다. 학부모와 선수는 사건이 터지면 입을 닫거나 아니면 부조리의 극치인 ‘공범 관계’로 편입되곤 한다. 그들은 가해 지도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호도하면서 오히려 피해자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감을 안기는 존재로 표변(豹變)한다. 이게 바로 그동안 간과했던 한국 체육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나와 내 자식만 괜찮으면 정의와 진실에 눈을 감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선수와 학부모의 의식구조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 품격 떨어지는 생각과 행동이 한국 체육을 망치는 주범이다. 특히 내 자식의 이익을 위해 남의 자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천박한 학부모의 이기주의는 한국 체육의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일 게다. 진정한 체육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학부모와 선수의 고해성사다.

“우리도 죄인입니다!” 건강한 한국 체육의 미래를 위해 학부모와 선수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할 때다. 주체의 성찰과 각성,한국체육 개혁의 마지막 숨어 있는 퍼즐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