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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첫 타석은 완벽한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두 번째 타석에서는 전매특허와도 같은 ‘끝내기 홈런성 빠던’으로 화려한 재기를 선언했다. 잦은 부상으로 사실상 주전 경쟁에서 멀어져 자괴감 속에 정규시즌을 보낸 뒤 포스트시즌에 극적으로 선발로 복귀한 올시즌, 그의 야구 인생 축소판 같은 활약이다. 두산의 ‘영원한 캡틴’ 오재원(35) 얘기다.
오재원은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추가점과 쐐기점을 모두 자신의 방망이로 만들어냈다. 1회말 호세 페르난데스의 선제 2점홈런 이후 소강상태이던 경기가 4회말 박세혁의 볼넷과 김재호의 중전안타로 흐름을 탔다. 1사 1, 3루 기회에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오재원은 LG 선발 이민호가 던진 140㎞짜리 패스트볼이 가운데로 날아들자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2회말 첫 타석에서 146㎞짜리 빠른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아쉬움을 완벽한 노림수로 만회한 셈이다.
공이 배트에 맞은 이후 오재원은 마치 끝내기 홈런을 친 듯한 빠던(배트 던지기)을 했다.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단을 향해 포효하며 마치 홈런을 때려낸 것처럼 환호했다. 잠실에서 가장 깊은 우중간으로 타구가 향한 탓에 홈런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미 관중석은 오재원의 세리머니로 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LG 우익수 이형종이 악착같이 달려가 점프했지만 살짝 미치지 못했고, 3루에 있던 박세혁이 유유히 홈을 밟았다. 2루에 안착한 오재원은 홈런이 되지 않은 아쉬움보다 ‘해냈다’는 승리 세리머니를 더 크게 했다. 오재원은 “같은 자리로 두 번이나 홈런을 못쳤다. 맞는 순간 홈런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타구가 떨어져 ‘이상하다’ 싶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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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말 1사 2루에서도 최성훈이 던진 바깥쪽 빠른 공을 가볍게 밀어 좌중간 적시타를 때려냈다. 사실상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타로, 2015년 업셋 우승을 재현할 듯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그는 “1차전이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어도 선수들 모두 ‘이기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크리스)플렉센이 잘 던져준 덕분에 이겼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경기에 들어가니 아무생각 안나더라. 편하게 타석에 임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캡틴으로 시즌 개막을 맞았지만, 6월 햄스트링 부상을 시작으로 허리와 무릎 등 크고 작은 부상으로 85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주장 자리도 오재일에게 넘겨줬다. 두산이 극적으로 3위에 올랐지만 주전 2루수는 최주환의 몫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주환이 급성 족저근막염으로 정상출전이 어려워졌고, 김태형 감독은 베테랑인 오재원에게 선발 2루수 중책을 맡겼다. 오재원의 남다른 노림수는 승부처에서 빛났고, 3전 2선승제로 열리는 준PO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오재원의 관록이 또 한 번 환하게 빛났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