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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친분 있는 개인 의원 원장님으로부터 한 남자 환자분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았고 여러 곳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많이 아파한다고만 전화로 미리 알려주셨다.
환자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 하고, 다리를 절면서 들어오셨다. 함께 온 보호자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척추 시술을 받고 싶습니다.”
겨우 의자에 앉은 환자는 다짜고짜 시술 이야기를 했다. 여러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고, 이렇게 허리가 심하게 아플 때마다 신경성형술을 받고 좋아지셨다고 한다. 치료 받은 병원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신경성형술을 10번 정도 받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환자가 치료 방법을 먼저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뿐만 아니라 척추 시술을 10번이나 받았다면 남다른 사연이 있겠구나 생각하고 자세히 여쭤보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통증이 반복됐고, 가끔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일을 하다가도 허리가 아파 멈추고 며칠씩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척추병원에서 MRI 검사도 했다.
다행히 MRI 상으로는 수술할 정도로 심하게 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협착증이나 디스크는 없었다. 하지만 디스크의 퇴행성 병변 때문에 염증과 유착이 심해 신경성형술을 권유받았고, 그 때마다 결과가 좋았다고 한다. 신경성형술은 지름 1㎜의 카테터 기구를 삽입해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물을 투여하는 치료법으로 신경 주변의 유착을 박리하고 좁아진 신경관을 넓혀줌으로써 약물이 신경 주위에 더 잘 퍼져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게 허리가 아플 때마다 신경성형술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발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재방문해 진료를 받으면 약을 계속 추가하여 주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라도 해서 좋아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는 MRI를 보고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하니 정말 답답했습니다.”
환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미 약을 7개나 먹고 있는데도 증상이 악화되니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담당 의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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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그 분의 직업이다. 여쭤보니 건물의 각종 시설물을 관리하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쪼그리거나 불편한 자세로 계속 작업하다 보니 척추에 무리가 많이 간 것으로 보였다.
조심스럽게 “여건이 되면 직장을 바꾸시는 건 어떨까”하고 말씀드렸더니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마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을 거라 짐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환자에게 신경성형술이 효과가 좋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나 역시 말씀을 드렸던 거였다.
우선 급한 불을 꺼야 하기 때문에 통증의 원인이 되는 신경 부위에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신경 주사 치료와 인대 증식 치료를 일단 시행했다. 병행 치료한 인대 증식 치료는 인위적으로 염증 반응을 유도해 인체의 자가 치유 원리를 이용한 방식으로, 손상된 인대와 힘줄을 재생시키고 강화해 척추 통증의 재발을 방지하는 치료법이다.
치료 뿐 아니라 일상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해 허리를 과도하게 굽히거나 쪼그리는 자세를 피하게 하였고, 스트레칭법도 알려드렸다. 지금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면서 허리 상태가 점차 좋아졌고, 복용약도 많이 줄일 정도로 호전되었다.
이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치료효과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처방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른 진료과도 마찬가지지만 척추분야에서도 내시경이 도입되는 등 치료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의 적절한 치료와 더불어 환자의 노력이나 여건의 개선이 있어야만 좋은 치료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인천힘찬종합병원 신경외과 이병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