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길상사에독립운동 역사 담은 만해 한용운 심우장조선 화가 장승업 집터, 성북예술창작터복자교 일대에 옛 물길 살린 거리갤러리침이 꼴깍 넘어가는 수연산방 이르는 길칼국수·파스타 등 세계 ‘면’ 요리가 가득
길상사
길상사는 도심에 지어졌어도 전각들이 숲에 둘러싸여 있어 산 속 사찰 같은 분위기를 띤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양미정 기자] 아파트와 빌딩으로 빼곡히 채워진 회색빛 도시에 살다 보면,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숲으로 바다로 떠나기엔 심리적 부담이 커 망설여진다.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최남단 마라도까지 삼면이 바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본거지를 벗어나기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급기야 사람들은 서울 안에서 자연을 쏙 빼닮은 여행지를 찾기에 나섰다.

최근 수도권에 거주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곳은 성북구다. 서울의 중심에서 살짝 동북쪽에 있는 만큼 수도권 어느 지역에서 출발해도 접근성이 좋고 북악산, 개운산, 북한산, 낙산, 삼각산이 훌륭한 자연경관을 선사하며 우리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문학인의 생가(한옥)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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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경내에 공덕주 김영한의 사당과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전통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도심 속 안식처’ 4곳

성북구 여행의 필수 코스는 심우장(한용운생가), 길상사, 수연산방(이태준가옥), 최순우옛집이다. 잘 보존된 한옥의 처마 밑이나 뜰에 앉아 신선한 바람을 쐬면 나무와 향토가 주는 싱그러움과 함께 한여름 무더위도 금세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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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 대로변에 만해를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만해 조각상과 시비가 세워졌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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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가 서재로 사용했던 온돌방에 만해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은 1933년 성북동 골짜기에 심우장을 지었다. 비좁고 가파른 골목을 한참 오른 뒤에야 갈 수 있는 심우장에 도착해 낮은 철 대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너른 마당에 북향으로 지은 근대한옥 한 채와 관리소가 보인다. 만해는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싫어서 남향집을 거부하고, 산비탈 북향 터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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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는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해 깊은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적묵당이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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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방문객이 극락전 앞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성북동 최고급 요정에서 사찰로 환골탈태한 길상사도 눈여겨보자. 길상사 일주문을 통과해 절 마당에 있으면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 같다. 삼각산 남쪽 자락의 숲과 계곡이 절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대원각 주인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감동해 대원각 대지 7,000평과 건물 40여 동을 절 짓는 데 시주했다. 당시 시가 1,000억이 넘는 부동산이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이후 1997년 대원각의 이름을 길상사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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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은 1900년대 개량한옥으로서 건물 한 채에 사랑채와 안채가 함께 지어져 있다. 오른쪽 누마루가 사랑방 역할을 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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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의 여름철 인기 메뉴인 단호박 빙수.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수연산방은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 상허 이태준의 성북동 자택 이름이다. 그는 월북하기 전인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수연산방은 ‘여럿이 산속 집에 모여 읽고 공부한다’라는 뜻을 담는다. 이름에 걸맞게 당시 수연산방은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상허는 김기림, 정지용, 이효석, 박태원, 김유영 등과 구인회를 조직하고 수연산방에서 시와 문학을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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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양옥집으로 둘러싸인 최순우옛집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지켜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1호이다. 대문 앞에 벽면(오른쪽)에 후원자 명단이 적혀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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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옛집 안채에서 자원활동가가 관람객에게 최순우의 생애와 옛집에 관해 해설해 주고 있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최순우옛집은 미술사학자이자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인 혜곡 최순우가 말년을 보냈던 근대한옥이다. 혜곡은 이곳에서 대표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다. 이후에 집이 헐릴 뻔했지만, 이화여대 교수였던 김홍남이 시민 후원금을 모아 사들였다. 이로써 최순우옛집은 시민이 지켜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1호다. 혜곡이 살뜰히 가꾸었던 옛집 곳곳에는 유품과 친필 원고, 문화예술인들이 보낸 연하장과 선물한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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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 최초로 건립된 성북구립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를 주로 연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예술의 성지 성북구, ‘성북예술창작터’로 신진 예술가 양

성북예술창작터(성북구립미술관 분관)는 동사무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고친 도시재생공간이다. 조선 시대 화가 장승업의 집터였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신진 예술가를 발굴·지원하는 이곳에 가면 실험적인 창작 활동을 하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성북예술창작터는 열린 미술 문화 만들기에 힘쓰는 곳.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지금 성북예술창작터에 가면 전형산 작가의 1인전 ‘목소리의 극장’을 관람할 수 있다. 총 8점의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고, 관람객이 작품 일부를 작동해 볼 수 있다. 설치미술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스텝이 작품을 설명해주고, 작동법을 알려준다. ‘목소리의 극장’전은 오는 24일까지 열린다.

성북예술창작터 관람 후에는 성북구립미술관이 주관하는 ‘거리갤러리’를 함께 둘러보면 좋다. 거리갤러리는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미술관’ 콘셉트로 진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2018년 건축가 조성룡이 성북구립미술관 아래 복자교 일대에 오래된 석축과 건물, 옛 물길을 살려 거리갤러리 공간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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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누들거리의 원조격인 국시집의 손칼국수. 면을 삶아 건진 후 육수에 담아내는 건진국수 스타일의 칼국수다. 고깃국물인데도 빛깔과 맛이 매우 깔끔하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세계의 면 요리가 한 자리에 ‘성북동 누들거리’

성북동에는 면 요리 전문점이 많다. 수십 년 된 칼국수와 잔치국수 식당을 비롯해 메밀국수, 짜장면, 냉면, 쌀국수, 파스타, 우동 전문점 등 약 27개 점이 한성대입구역에서 수연산방에 이르는 길에 늘어서 있다.

5번 출구 나폴레옹제과점 뒤편 주택가 골목 안에 있는 ‘국시집’이 성북동 칼국수의 원조로 알려졌다. 2대째 영업 중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한우 사태와 양지로 끓인 육수는 맑고 깊은 맛을 낸다. 손으로 반죽한 경상도식 건진국수 면발은 매끄럽게 목을 넘어간다.

6번 출구 쪽에는 멸치국수가 맛있기로 소문난 ‘구포국수’가 있다. 이밖에 ‘성북동칼국수’, ‘손가네곰국수’, ‘하단’, ‘올레국수’, ‘우리밀칼국수’ 등 10여 개 국숫집이 누들거리에서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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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빵공장의 대표 메뉴인 생크림팡도르. 평일 300개, 주말 400개 한정 판매한다. 양미정 기자 certain@sportsseoul.com

누들거리에는 소문난 빵집도 많다. 터줏대감 ‘나폴레옹과자점’을 필두로 산딸기 프레첼이 유명한 ‘샤뽀블랑’, 천연발효종으로 건강한 빵을 만드는 ‘오보록’, 간식보다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식사 빵을 파는 ‘밀곳간’ 등이다. 심우장 위쪽 베이커리 카페 ‘성북동빵공장’은 숲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40여 종의 빵과 커피를 제공하는 성북동 핫플레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