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포스터. 사진 | (주) 김기덕필름 제공


[스포츠서울] 속이 메스껍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계에 이만큼 '새로운' 영화가 있을까 싶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그렇다. 우리 삶의 가장 비참한 부분들을 조명해 관객들이 더 이상 그것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실제 삶보다도 현실적이고 뉴스가 보여주는 여타 사건들보다도 폭력적이다. 
그는 매서운 혹평을 받았던 데뷔작 <악어>부터 '여성 비하'에서 벗어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지나 최근 베니스 데이즈의 개막작이자, 작품상을 받은 <일대일>까지 고독한 변방의 길을 걸어왔으며 여전히 그 변방에 서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해외 영화제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감독. 한때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김기덕의 영화는 피하고 싶어도 자꾸만 찾아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위쪽 <파란 대문> 포스터. 사진 | (주) 부귀영화 제공

아래쪽 <파란 대문> 속 장면. 출처 | <파란 대문> 영화 캡처 



◇ 창녀와 여대생, 동갑내기들의 이야기 <파란 대문>
그의 첫 영화 <악어>는 '강간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으며, 두 번째 영화 <야생동물 보호구역>는 충무로의 비주류로서 그가 발버둥 쳤던 기록이다. 그의 세 번째 영화 <파란 대문>은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에서 김기덕 그 자신이 직접 밝혔듯이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고,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지만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었다"는 영화다. 창녀와 여대생이 한 지붕에 사는 이색적인 소재와 '성'을 다루는 그의 직설적이면서도 실험적인 화법은 대중에는 낯선 충격이었고,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 대문>은 "성을 이 정도로 깊고 넓게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는 평론가 강한섭 교수의 극찬과 함께 김기덕 감독이 베를린 영화제와 첫 인연을 맺게 되는 작품이다. 



위쪽 <섬> 포스터. 사진 | (주) 명필름 제공

아래쪽 <섬> 속 장면. 출처 | <섬> 영화 캡처 



◇ 구원과 사랑의 <섬>
피에 물든 낚시 바늘. 영화 <섬>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장면이다. 제21회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상을 수상했으며 제57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분 넷팩상을 수상한 <섬>은 충격적인 자해 장면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섬>에서 표현되는 사랑, 욕망, 폭력, 섹스는 비정상적이며, 매우 원시적으로 드러난다. 세상과 고립된 낚시터는 하나의 섬으로, 그 섬에 사는 여주인공 희진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고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는 여자다. 그런 여자가 한 남자를 '구원'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김기덕은 직접적이고 파격적으로 묘사하며 밑바닥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사랑을 여과 없이 대중에 선사했다.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충격적인 사랑은 영화 속에서 몹시도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그려진다. 정형화되지 않은 영화의 화법은 신비로운 '섬' 그 자체를 만들어냈으며, 세계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위쪽 <나쁜 남자> 포스터. 사진 | (주) 엘제이필름 제공

아래쪽 <나쁜 남자> 속 장면. 출처 | <나쁜 남자> 영화 캡처 



◇ 창녀가 된 여대생 <나쁜 남자>
언제나 '흥행'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김기덕 감독의 최초 흥행작이다. 김기독 스스로도 "첫 영화 <악어> 관객이 5,000명, 두 번째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약 6,000명, 세 번째 <파란 대문>이 약 3만 명 정도로, 쉽게 말해서 내 영화는 한 번도 흥행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 가운데 <나쁜 남자>는 관객 수 70만을 동원했다. 때문에 <나쁜 남자>는 가장 강렬하게 '김기덕'이라는 이름 석 자를 대중에 알린 작품이다. 평범하게 살던 여대생을 창녀로 끌어내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페미니스트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관객들은 이미 깡패 두목 한기가 여대생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는 그 순간부터 <나쁜 남자>에 매료됐다.



위쪽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포스터. 사진 | (주) 엘제이필름, 판도라필름 프로덕션 제공

아래쪽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속 장면. 출처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화 캡처 



◇ 돌고 도는 인생을 그려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의 과도기적 고뇌가 그대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김기덕이 처음으로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기도 하며, 그만큼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색이 강한 영화다. 그의 아홉 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승려의 일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가 평생을 고민해온 인간의 욕망과 애증의 문제가 감각적으로 내포돼있으며, 한국 영화계가 김기덕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북미에서 흥행 수익 100만 달러를 돌파했으며 관객과 평단에 호평을 받았다. '여성 비하'라는 고질적인 그의 낙인을 어느 정도 지워낼 수 있었던 영화다.



위쪽 <사마리아> 포스터. 사진 | (주) 김기덕필름 제공

아래쪽 <사마리아> 속 장면. 출처 | <사마리아> 영화 캡처 



◇ "오늘부터 바수밀다라고 불러줄래?" <사마리아>
원조 교제를 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 사회적 문제를 담아낸 파격적인 그 이야기를 김기덕은 이전보다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제54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에게 감독상인 은곰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김기덕의 영화치곤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작품이기도 하다. 원조 교제를 하다가 죽은 여고생 재영. 재영의 친구 여진은 재영의 수첩에 적혀 있는 남자들과 차례로 몸을 섞으며 남자들이 재영에게 주었던 돈을 다시 돌려준다. 이 가운데 여진의 아버지는 여진이 원조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딸을 미행하며 원조 교제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대중에게 도덕적인 관념과 잣대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남자들과의 잠자리 이후 남자들을 불교 신자로 이끌었던 인도의 '바수밀다', 제목 자체에서 드러나는 '사마리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인 색채가 덧칠된 영화다. 동시에 '단지 유럽 여행을 위해 원조 교제를 하는 여고생'이라는 문제적 대상을 던져주며 '구원'이라는 그의 영화적 특징을 잘 드러냈다.




위쪽 <빈집> 포스터. 사진 | (주) 김기덕필름, 씨네클릭 아시아 제공

아래쪽 <빈집> 속 장면. 출처 | <빈집> 영화 캡처 



◇ 말없는 동거 <빈집>
영화 내내 주인공들의 대사가 딱 두 마디다. "사랑해요", "식사 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은 이 영화는 위안부 누드 파문 이후 이승연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영화이며, 제61회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영화다. 빈집에 들어가 자기 집처럼 지내는 소년 태석과 남편에게 매를 맞고 사는 여자 선화. 판타지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관객을 매료시켰으며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갔다. 물론 여전히 현대가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의 부재, 공허함, 죽음, 폭력 등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지만 <빈집>은 이전의 작품보다 부드럽게 이를 그려낸다. 김기덕 감독이 마지막에 와서야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쪽 <피에타> 포스터. 사진 | (주) 김기덕필름 제공

아래쪽 <피에타> 속 장면. 출처 | <피에타> 영화 캡처 



◇ 자비를 베푸는 게 가능할까? <피에타>
파격적이다. 직접적인 상징성들은 여전히 거북함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영화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김기덕의 처절한 <피에타>는 세계를 매혹시켰다. 피에타의 언어적 의미는 '슬픔' 혹은 '비탄'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주검을 받아든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예술 작품을 통칭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김기덕의 <피에타>는 인간의 폭력성을 가장 극한까지 끄집어낸다. 그는 인간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임을 알리며 삶과 죽음, 돈과 가족, 속죄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냈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강도와 강도 앞에 나서 자기가 강도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 김기덕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김기덕식 '구원'을 보여준다.
황긍지 인턴기자 prid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