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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2일(이한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끝난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전에서 후반 마커스 래시포드에게 다섯 번째 골을 내준 뒤 허탈해하고 있다. 도하 | 로이터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사상 처음으로 열사의 땅 중동 한복판에서 열리는 카타르월드컵에서 초반 중동 팀의 굴욕이 이어지고 있다. 카타르가 92년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전에서 개최국 패배 불명예를 쓴 데 이어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아시아 1위(20위)’ 이란은 ‘6실점 대패’ 수모를 안았다.

이란은 22일(이한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끝난 대회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잉글랜드에 2-6 참패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체제에서만 세 번째 월드컵 본선에 나선 이란은 특유의 밀집수비를 일컫는 ‘늪 축구’를 펼치며 잉글랜드 화력 제어에 나섰다. 그러나 초반 삐그덕거렸다. 주전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가 전반 7분 만에 동료 수비수와 얼굴을 부딪친 뒤 코 출혈, 뇌진탕 증세를 동시에 보여 9분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후 이란은 부카요 사카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는 등 전,후반 각각 3골씩 내주며 무너졌다. 메흐디 타레미가 후반 추가 시간 페널티킥 득점을 포함해 2골을 넣으며 영패를 면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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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 AFP연합뉴스

이란은 케이로스 체제에서 지난 2014년 브라질 대회에 4실점(1무2패), 2018년 러시아 대회에 2실점(1승1무1패)만 허용했을 정도로 월드컵 무대에서 강력한 방어망을 뽐냈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 직후 최근 이란 사회 반정부 시위에 일부 동참한 선수단 분위기 등을 언급하면서 “경기 준비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란 축구가 월드컵에서 한 경기 6실점한 건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그것도 사실상 안방과 다름이 없는 카타르 땅에서 수만여 팬의 응원을 받으면서 경기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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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전에서 개최국 사상 첫 패배를 당한 카타르의 모하메드 문타리가 경기 종료 직후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카타르와 이란의 초반 굴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시아 팀은 늘 ‘도전자 입장’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다. 이전보다 많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주요리그를 뛰지만, 팀으로 뭉쳤을 때 전력은 여전히 ‘언더독’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수비에 무게를 둔 뒤 카운트 어택을 노리는 전술이 실리적이다.

하지만 카타르와 이란의 첫 경기에서 드러났듯 현대 축구는 수비 지역에 숫자만 많이 두고 공간을 좁힌다고 해서 상대 공격력을 쉽게 제어할 수 없다. 요즘 빅리그에서도 밀집 방어 형태를 보이는 팀을 상대로 빅클럽이 다채로운 전술을 통해 무너뜨린다. 빠른 템포의 패스는 물론 최후방 수비가 제어하기 어려운 질 높은 크로스, 뛰어난 개인전술 등을 지닌 선수 역량을 극대화한다.

지난 21일 에콰도르가 개막전에서 개최국 카타르를 2-0으로 격침할 때도 마찬가지. 에네르 발렌시아가 전반 16분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기 전 에콰도르는 두 번의 전진 패스로 카타르 수비진을 무너뜨렸다. 15분 뒤 발렌시아가 헤딩 추가골을 넣을 땐 골문 앞에 카타르 수비수 5명이 있었으나 공격 파트너 마이클 에스트라다가 먼저 뛰어올라 수비 시선을 교란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그 뒤에서 정확한 위치 선정에 이어 유연한 머리 사용으로 골 맛을 봤다.

이란-잉글랜드전도 유사했다. 잉글랜드는 다양한 연계 플레이로 이란 측면을 흔들었고 전반 35분 주드 벨링엄이 헤딩 선제골을 넣었다. 8분 뒤엔 세트피스 상황에서 수비수 해리 매과이어의 높이를 활용해 사카가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전반 추가 시간엔 해리 케인의 정교하고 빠른 오른발 크로스를 라힘 스털링이 논스톱 슛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밀집수비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아시아 팀도 느낄 만하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