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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도하(카타르)=정다워기자] 지금의 벤투호를 만든 것은 내부의 신뢰, 그리고 리더의 뚝심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포르투갈, 우루과이 그리고 가나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강자와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발휘, 1승1무1패로 조 2위에 올라 무려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결과만 중요한 게 아니다.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과정 자체가 우수했고, 드라마틱 했다. 대표팀은 세 경기에서 모두 우리의 스타일로 승부를 걸었다. 상대에 따른 맞춤 전략을 수립하거나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흔히 쓰는 선수비 후역습으로 싸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 경기에서 보여준 축구의 수준이 높았고, 일관성이 있었다. 대표팀이 추구하고 4년간 갈고 닦은 ‘우리의 축구’로 내용에 결과까지 얻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벤투호는 4년이라는 긴 여정을 이어오는 동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부임 후 처음으로 치렀던 2019년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하며 물음표를 남겼다. 월드컵 예선을 거치면서도 경기를 주도하고 능동적으로 싸우는 스타일이 세계 무대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때로는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을 외면하고 예상 밖 인물을 대표팀에 데려와 기량을 점검하는 등 선수 선발로 인해 논란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한일전서 완패를 당해 최대 위기에 놓인 적도 있다.
안팍에서 흔드는 목소리도 컸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서조차 일부 관계자들이 벤투 감독의 축구에 노골적으로 회의감을 드러내는 등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홍명보 전 협회 전무이사,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등 전임 지도부에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으나 바뀐 지도부에서는 벤투 감독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이미 월드컵 전 한국 축구의 방향성이 벤투 감독이 간 길과 달라야 한다고 공언한 주요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정몽규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벤투 감독의 보호막이 되어줬고, 무사히 4년 여정의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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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있는 항해를 지속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내부의 신뢰다. 선수들은 벤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팀벤투’가 이끄는 대로 훈련했고, 경기에 나서며 우리의 축구를 업그레이드 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 대표팀 선수들은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감독님의 축구를 믿는다”라고 말한다. 팀벤투의 세부적인 전술, 체계적인 훈련, 철저한 피지컬 관리 등은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대표팀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수준이 높다. 밖에서 흔드는 목소리가 있어도 벤투호는 견고하게 레이스를 이어간 배경이었다.
리더인 벤투 감독의 뚝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벤투 감독은 세간의 의견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전진했다.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평가로 벤투호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한 것도 돋보였다.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는 “16강 진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비관적인 사람도 있고 낙관적인 사람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알았다. 상대도 분석했다. 16강에 갈 만한 야심을 가질 수 있었다. 겸손하게 준비하면서도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팀벤투는 이미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대회를 준비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나름대로 파격적인 유연성도 보여줬다. 1차전서 황의조가 부진하자 2차전서 곧바로 조규성으로 주전 스트라이커를 교체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1년8개월간 쓰지 않던 이강인의 출전 시간을 늘려간 끝에 3차전에서는 베스트11에 넣기도 했다.
16강 진출이라는 결과 자체는 기적에 가깝다. 우리가 승리한 동시에 우루과이가 2골 차로 승리해 극적으로 티켓을 손에 넣었으니 도하의 기적이라는 표현은 틀리지 않다. 다만 이 결말에 도달한 과정을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벤투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구성원의 힘과 노력이 카타르를 기적의 땅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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