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병헌
두산 이병헌이 투구하고 있다. 사진제공 | 두산 베어스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첫 경기로 속단할 순 없다. 더구나 시범경기다. 컨디션을 점검하는 차원이어서 100%로 보긴 어렵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두산 고졸(서울고) 2년 차 왼손 투수 이병헌(20)이 구위와 안정감을 동시에 잡았다.

이병헌은 지난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시범경기에서 5-3으로 앞선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선두타자 박승욱에게 볼 2개를 연거푸 던졌지만, 이내 제구를 잡았다. 초구는 하체가 빨리 이동한 탓에 팔이 나오지 않았고, 2구는 반대로 팔을 너무 빨리 끌고나와 공이 바닥으로 향했다. 3구째 시속 147㎞짜리 속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리듬과 템포를 동시에 회복했다.

밸런스를 찾은 이병헌은 박승욱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황성빈과 김민수를 3루와 유격수 땅볼로 각각 처리하고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최고구속은 시속 147㎞까지 측정됐고, 슬라이더를 가미해 13개를 던졌다. 박승욱에게만 7개를 던졌으니, 영점 잡힌 구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한 셈이다.

이병헌
두산 이병헌이 시범경기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제공 | 두산 베어스

고교 졸업 후 1차지명으로 두산에 입단한 이병헌은 왼손 파이어볼러로 큰 기대를 받았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후 재활 중인데도 1차지명됐을만큼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재활 후 실전 등판을 시작할 때는 통증은 사라졌지만, 투구 리듬이 일정치 않아 제구가 들쑥날쑥한 게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킥이나 팔 높이도 일정치 않았고, 상체가 빨리 엎어지는 등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그러나 왼손투수가 부족한 팀 현실을 고려해 호주 스프링캠프 명단에 합류했고, 정재훈 박정배 코치와 다카하시 히사노리 인스트럭터와 간결하고도 힘있는 투구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정재훈 코치님은 ‘킥하자마자 (몸이 앞으로) 나가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잠깐 멈췄다 중심이동하는 느낌으로 던지라’는 주문하셨다. 박정배 코치님도 ‘중심이 너무 앞으로 나가니 캐치볼 때부터 뒤에 남겨두는 걸 신경써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두산 이병헌
두산 이병헌이 다소 와일드한 투구폼을 안정적으로 바꿔 올시즌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제공 | 두산 베어스

실제로 이날 투구에서는 디딤발이 지면에 닿아 축을 형성할 때까지 무게 중심이 왼발에 남아있는 인상을 줬다. 중심이 뒤에 남아있으면, 힘을 한 번에 전달할 추진력으로 활용할 수 있어 구위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글러브에 있던 공을 꺼내 릴리스포인트까지 끌고 나오기까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한 동작이 나온 점이다. 이병헌은 “원래 글러브 안에 공을 두고 팔을 올린 힘을 이용해 스윙을 시작했다. 캠프에서 조정한 것은 글러브를 손으로 한 번 치면서 박자를 맞추는 데 신경썼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공격적인 투구를 목표로 시범경기를 통해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은 이병헌은 올시즌 두산 왼손 불펜진의 중심 역할을 해야한다. 1군 경험을 쌓아 경기운영 능력이 생기면, 선발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는 투수다. 생애 첫 시범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로 눈도장을 찍은 이병헌이 두산의 해묵은 숙원을 풀어줄지 관심이 쏠린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