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수많은 설득의 과정을 거쳐 수많은 사람의 노고를 빌려 완성한 ‘드림’. ‘극한직업’의 영광이 큰 몫을 했지만 세상에 내놓고 보니 이 영화의 핸디캡은 홈리스가 아닌 이병헌 감독이었다.”
26일 개봉한 영화 ‘드림’의 연출자 이병헌 감독은 최근 자신의 개인 채널에 이같은 글을 적었다. ‘극한직업’의 코믹함을 기대한 관객들이 행여 ‘드림’의 메시지를 읽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서다.
‘드림’은 역대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영화계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톱스타 박서준, 아이유가 주연을 맡았고, 누적관객 1626만명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2019)의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으며 개봉 전 한국영화 예매율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극한직업’의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같은 신박한 대사와 찰진 유머를 기대했다면 ‘드림’에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극한직업’처럼 시종일관 웃기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찰나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이 감독이 연출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을 연상케 한다. 공교롭게도 출연진(김종수, 정승길, 허준석, 백지원, 김명준)과 홍대, 소민, 효봉, 환동, 인국 같은 극중 이름까지 ‘멜로가 체질’과 같다.
이 감독은 ‘드림’에서 ‘극한직업’의 웃음을 걷어낸 이유에 대해 “이 영화는 이병헌스럽지 않고, ‘드림’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이야기를 꼭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설득하는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다. ‘극한직업’까지 나왔는데 이런 부침을 겪어야 하나, 혹시 내가 틀린 게 아닐까 되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선을 넘은 것 같다. 고집이든, 아집이든 어떤 손해가 있더라도 감수하고 끝을 봐야 했다.”
영화는 2010년 한국이 첫 출전한 ‘홈리스 월드컵’을 모티프로 한 실화 기반의 작품이다.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경기에 첫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20대1로 대패하는 등 고전했고 총 64개국 중 43위에 그쳤지만 ‘최우수 신인 팀상’(BEST NEW COMER)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인 특유의 투지가 ‘축구의 나라’ 브라질 관중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TV를 통해 이 사연을 접한 이병헌 감독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였지만 큰 감동을 느끼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평소 상처받고 소외받고 실패한 삶에 주목했던 감독 특유의 성향이 작용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노숙인이 축구하는 이야기’라는 한 줄의 편견을 깨기 위해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감독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지 못하는 세상인데, 노숙인의 축구라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거라 확신했지만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힘겨웠다”고 털어놓았다.
어렵사리 투자를 받고 나니 캐스팅이 문제였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월드컵에 출전한 노숙인들. 박서준과 아이유가 연기한 홍대와 소민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는 ‘외부인’이다. 이병헌 감독은 특히 미미한 분량에도 시나리오를 받은 뒤 1주일만에 출연을 결정해준 아이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초고에는 소민 역할이 홍대보다 나이가 많은 인물로 설정했다. 어느날 한 스태프가 ‘팬심’으로 캐스팅 리스트 명단 최상단에 아이유를 올려놓았다. 미친 척 하고 ‘아이유 쪽에 시나리오를 보내봐라. 만약 출연한다고 하면 시나리오를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뒤 거짓말처럼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아이유가 이 작품에 담긴 의미를 알아봐줘서 고마웠다. 나 역시 tvN‘나의 아저씨’(2018)를 본 뒤 아이유의 팬이 됐는데 촬영 내내 준비를 잘 해와서 딱히 디렉팅할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캐스팅만으로 영화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코로나19라는 복병으로 밥먹듯이 촬영이 중단됐다. 브라질에서 열린 경기는 여건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촬영했는데 빠듯한 예산과 장마라는 암초를 만나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했다.
이 감독은 “시간이 빠듯해서 현장에서 재촬영하거나 장면 합을 수정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참고 묵묵히 촬영만 했다. 감독이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아쉬움이 남아서 죽을 때도 생각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여러 상황을 거쳐 마침내 4년만에 빛을 보는 ‘드림’에 대해 이 감독은 “재미보다 의미있는 영화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조부모까지 함께 보는, 전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관객 수도, 영화산업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통의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느끼는 게 나의 ‘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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