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김동영기자]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특급 스타도 전성기가 지나고, 부진이 계속되면 ‘은퇴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생각이 조금 다른 이도 있다. 두산 이승엽(47) 감독이다.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경기에서 장원준이 선발로 나섰다. 5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4실점을 기록하고 승리투수가 됐다. 두산은 7-5의 승리를 거뒀다.

지난 2020년 10월7일 문학 SK전 이후 958일 만에 선발로 등판했다. 승리는 2018년 5월5일 잠실 LG전 이후 1844일 만이 된다.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만드는 등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2018년부터 하락세를 탔다. 2019~2022년에는 4년간 67경기 등판에 그쳤다.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이는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부활했다. 시즌 첫 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개인 통산 130승 고지를 밟았다.

이승엽 감독도 호평을 남겼다. “2회 실점이 있었지만, 3회부터 구위가 올라왔다. 5회까지 잘 막았다. 한 주의 첫 경기였기에 길게 가주기를 바랐는데 장원준이 잘 던졌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부진에 시달리면서 ‘은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해지고 있었다. 2022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선수다. 이승엽 감독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정작 이승엽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내 결단이라니, 그런 것 아니다. 장원준 정도 되는 선수라면, 구단이 구단이 결정할 수 없다. 본인이 해야 한다. 이 정도 성적을 낸 선수에게 구단에서 ‘그만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원준 스스로 현역을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올해도 함께 하는 것이다. ‘다른 팀 알아보라’고 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예의가 아니다. 129승 투수였다. 안 좋으면 스스로 생각을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굵직한 커리어를 남겼다. 국가대표 에이스 역할도 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절치부심했고, 기어이 선발승까지 따냈다.

이승엽 감독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은퇴는 우리가 말할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40살 넘어서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관록과 요령으로 상대를 이긴다. 모든 것은 본인 선택이다”고 설명했다.

베테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내놨다. “생각은 20대일 것이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20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장원준도 이제 불혹 가까이 되지 않았나. 전성기 생각을 하면 오히려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다른 연습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내 현역 마지막 때 생각도 난다. 각 팀 베테랑들이 잘했으면 좋겠다. 어린 선수들이 잘하면 좋지만, 어린 선수들로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은 쉽지 않다. 베테랑들이 잘하는 것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더그아웃에서 힘이 된다. 성적이 안 좋아도 캡틴이 가능하다.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또한 “나는 ‘신구조화’라는 말을 좋아한다. 형들이 벤치에서 힘을 줄 수 있다. 경기에 나가지 않아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 팀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이승엽 감독도 41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은퇴 시즌인 2017년에도 타율 0.280, 24홈런 87타점, OPS 0.864라는 빼어난 기록을 남겼다. ‘국민타자’다운 모습을 보인 후 유니폼을 벗었다.

사실 2013시즌 위기가 있었다. 삼성 복귀 2년차였던 2023년 타율 0.253, 13홈런 69타점, OPS 0.693에 그쳤다. 37세 시즌이었고, 은퇴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 타율 0.308, 32홈런 101타점, OPS 0.915로 펄펄 날았다. 이후 2017년까지 삼성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천하의 이승엽도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실력으로 깼다.

두산 구성원 전체로 봐도 장원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이승엽 감독일 수 있다. 그리고 장원준이 감독의 기대에 오롯이 부응했다.

젊은 선수들이 동시에 잘해주면 당연히 팀은 강해진다. 대신 어느 팀이나 베테랑은 필요하다. 팀이 좋을 때 부스터 역할을 할 수 있고, 팀이 부진할 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팀의 ‘더그아웃 리더’가 된다. 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raining99@sportsseoul.com